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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Yo-han Park

故 박요한

선교사 · B-3

박요한

일생 글 읽을 일이 없다던 사람이 남이 한 번 할 때 열 번을 되풀이해 성경을 익히고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다. 옌볜에서 사역하던 중 보위부에 납치·북송되었고, 투먼 구류소 벽에 성구와 이름을 남긴 채 순교했다.

지역
중국
순교 사유
북한 선교 사역 중 순교
기록 요약
1기 · 돌가루 공장 출신 · 공개 처형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1기)
주요 사역 지역
지린성 지린시, 산둥성 지난시, 허난성 정저우시, 옌볜 조선족 자치주 왕칭현·룽징시 개산툰, 투먼 변방 구류소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통독 훈련생, 북한 출신 선교사, 진칼빈 선생과 함께 옌볜 지역 학생 모집 사역
최종 기록
북한 보위부 유인·체포 후 북송, 기독교 사건으로 공개 처형된 순교자로 기록

1기 · 사역 기록

순교의 발자취

글을 잘 읽지 못하던 청년이 성경 백독을 하기까지

지난 사역장에 찾아온 박요한 선생

지린성 지린시에서 시작된 나의 첫 북한 사역은 산둥성 지난시로 옮겨 왔다. 그 과정에 고된 사역장의 학습을 견디지 못하고 몇 명의 형제들이 떠나갔다. 나는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옌지시에 있는 조선족 전도사님에게 북한 형제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조선족 전도사님은 박요한 선생을 보내 주었다.

요한 선생은 먼저 와 있던 허익두 선생의 고향 친구였다. 요한 선생은 1998년 익두 선생과 동생 다윗 형제와 함께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는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딸을 두고 탈북했다. 요한 선생은 눈이 무섭게 크고 입술도 두터웠다. 목소리는 걸걸했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돌가루 공장과 생계 때문에 찾아온 사역장

처음에는 옌볜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옌지시 이란진에 있는 돌가루 공장에서 일했다. 돌가루를 내어 유리 원료로 만드는 공정은 열악하고 힘겨웠다. 중국인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이었기에 공장 주인은 갈 곳 없이 방황하는 탈북자들을 받아 일을 시켰다. 월급은 주지 않았다. 하루 12시간씩 힘들게 바위를 부수어 가루를 내는 일을 해도 먹을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많은 탈북자들이 그 공장에서 일했다. 갈 곳이 없었고 그렇게라도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모여 그렇게 고되고 힘들게 살았지만 북한 보위부는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한 곳에 수십 명의 탈북자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북한 보위부는 이들을 한꺼번에 잡기 위해 중국 공안들과 함께 버스를 몰고 체포하러 왔다. 다행히 돈도 주지 않고 부려먹던 중국인 사장이 탈북자들에게 미리 정보를 주어 도망가게 해 주었다.

요한 선생은 돌가루 공장에서 도망가면서 동생 다윗 형제와 헤어졌다. 다윗 형제는 생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옌지 조직폭력단에 들어갔다. 요한 선생은 조선족 전도사님에게서 성경을 배우는 사역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를 찾아왔다. 물론 성경을 배우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생계 문제 해결이 목적이었다.

힘으로 군림하려던 사람

북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배고프게 살아서 그런지 대개 덩치도 작고 힘도 약했지만, 요한 선생은 유별나게 덩치가 크고 힘도 셌다. 늘 사납게 싸우는 살벌한 탈북자들의 세계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었다. 사역장에 온 다음부터 그는 자기가 몇 년 동안 중국에서 무술을 배웠다고 큰소리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역장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요한 선생이 사역장에서 해야 할 일은 싸워서 이기고 강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술과 담배를 끊어야 했고, 원래 사용하던 공격적이고 거친 북한식 말투도 바꾸어야 했다. 어색한 한국식 경어를 사용해야 했고, 하루 종일 말씀을 들으며 성경을 통독해야 했다. 기도라는 것도 처음 하는 사람이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기도해야 했다. 외출은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는 할 수 없었다.

돌가루 공장에서 바위를 부수고, 주먹으로 공격하고 싸워 이기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알았던 요한 선생에게 사역장은 정말 힘든 세계였다. 이 전혀 다른 세계에서 그는 강자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약자일 뿐이었다.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는 것부터 고문이었다.

요한형제가 나와 함께 찍은 사진. 다른 북한형제들보다 덩치가 컸다

한글과 성경을 배우며 달라지다

요한 선생은 처음 들어올 때 한글도 미처 숙련되게 읽지 못했다. 일생 동안 글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가끔씩 소리 내어 읽을 때 자기 차례가 오면 진땀을 빼며 나만 쳐다보곤 했다.

허세를 부리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자신감에 충만했던 요한 선생이었지만, 3일이 지나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매일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며 답답해했다. 그러나 사역장을 떠나지는 않았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에게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정말 주님의 은혜였다. 이 때문에 이들은 고단한 훈련을 견디어 내고 탈북자의 삶에서 벗어나 주님의 귀한 사역자가 될 수 있었다.

요한 선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벽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허익두 선생과 김권능 선생이 요한 선생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야! 너는 우리가 두 달씩이나 기도해서 데려온 놈이야. 잘해야 돼!”

진칼빈 선생과 민선주 선생은 뒤늦게 사역장에 들어온 요한 선생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한글도 가르쳐 주고 성경도 가르쳐 주었다. 요한 선생도 주님의 은혜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빠른 속도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한글을 늦게 배웠지만 어디를 가든지 책을 놓지 않았던 요한 형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한다”

요한 선생이 자주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너희들은 머리가 좋지만 나는 머리가 나쁘대! 그래도 너희들이 한 번 할 때 나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한다. 그러면 나도 된대!”

요한 선생은 말한 대로 정말 그렇게 했다. 밤마다 새벽 1시, 2시까지 말씀을 암송하고 별도 학습을 했다. 그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노력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설교하고 기도하는 능력, 성경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웠다.

정저우 사역장에서 북한 선생들이 설교 훈련과 리더십 훈련 과정까지 마치고 나서 그들을 정식 북한 선교사로 임명했다. 요한 선생도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그가 보인 열정과 성실함으로 인해 앞으로도 더 잘할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이 때문에 요한 선생도 다른 선생들과 함께 북한 선교사로 임명했다.

폭탄이 되겠다는 고백

요한 선생은 설교할 때면 부흥사를 보는 것 같았다. 열정적이었고, 단순한 내용만 가지고도 부흥사처럼 호기 있게 설교했다. 듣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선생으로 세워지고 나서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나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저는 폭탄이 되어서 북조선의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목사님 앞에서 드러난 성경 실력과 웃음

한국에서 선병문 목사님께서 선교부장 장로님과 함께 우리 사역장에 오셨다. 베이징에서부터 목사님을 모시고 오면서 북한 선생들이 신약성경을 100독 가까이 통독했기에 설교도 잘하고 아주 귀하다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믿지 못하셨다. 그저 한 선교사의 사역 소개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사역장에 도착한 후 목사님은 예배를 인도하시면서 창세기의 요셉에 대해 설교하셨다. 설교 도중 목사님이 바울 선생에게 물었다.

“요셉의 아버지가 누군지 아세요?”

북한 형제들이 성경을 100독이나 했다고 하니 성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셨던 것 같다. 바울 선생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담입니다!”

설교를 듣던 북한 선생들의 폭소가 터졌다. 목사님은 이번에는 요한 선생에게 눈길을 돌리고 물으셨다. 요한 선생은 엄숙한 표정을 짓고 힘차게 대답했다.

“아브라함입니다!”

이번에는 모두가 뒤로 넘어가 버렸다. 나도 한참 웃다가 이들이 당황해서 그런다고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다시 요한 선생에게 물으셨다.

“요셉과 모세에 대해서는 알아요?”

요한 선생은 이번에는 침착하게 대답을 잘했다. 목사님은 북한 사람들이 성경을 잘 알고 있는 것을 신기해하셨다. 다음 날 두 분은 베이징 관광 계획을 취소하고 다시 사역장으로 오셨다. 이번에는 한 사람씩 설교를 시키고 들어보셨다. 뒤늦게 사역장에 들어온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웬만한 목사님들 수준이었다.

공원에서 아이처럼 기뻐하던 날

북한 선생들이 공원으로 가자고 떼를 부리던 날, 요한 선생은 큰 눈을 무섭게 뜨고 협박하듯이 나에게 말했다.

“선교사님, 공원 꼭 가 봐야 합니다! 안 가면 안 됩니다!”

나는 공원은 아이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했다. 토요일이라 대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축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 선생들이 오늘은 기어이 공원에 가 보자고 떼를 부렸다. 요한 선생이 힘주어 말했다.

“선생님, 우리는 평양에 한 번도 못 가 봤슴다! 죽을 때까지도 못 가 볼 겁니다! 북한에는 평양 딱 한 곳밖에 공원이 없습니다. 우린 맨날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원을 여기 이렇게 가까이 두고 들어가 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졌다. 그래서 들어갔더니 정말 다들 토끼 동산에 들어온 아이들 같았다. 덩치 큰 어른들이 아이들의 놀이기구를 이것저것 만져 보고 타 보고 신나서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그중에서 요한 선생이 제일 많이 뛰어다녔다. 이것도 타 보고 저것도 타 보며 욕심이 끝이 없었다. 그리고 탈 때마다 카메라를 든 형제를 불러 꼭 찍게 했다. 고향에 가면 크게 자랑해야 한다고 했다.

놀이기구를 유독 좋아했던 어린아이 같았던 요한 선생

진칼빈 선생과 함께 파송되다

요한 선생은 진칼빈 선생과 함께 한 팀이 되어 옌볜으로 파송되어 나갔다. 칼빈 선생과 요한 선생은 왕칭현 삼도구 아주머니 댁에 은거하며 활동했다.

두 선생이 행방불명이 된 후 두 사람을 찾으면서 나는 요한 선생의 동생 다윗 형제를 만났다. 다윗 형제는 형이 너무 많이 변해서 많이 놀랐다고 했다. 자신도 사역장에 들어가 공부하고 싶은 생각을 가끔씩 해 보지만, 현재는 옌지 조직폭력배에 가담하고 있는 처지라 쉽지 않다고 했다. 형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하자 놀랍게도 이 깡패라고 하는 사람이 쉽게 동의했다. 그래도 기대는 해 보기로 했다.

북한 보위부의 유인과 납치

두 주일 정도 지난 후에야 나는 요한 선생이 칼빈 선생과 함께 북한 보위부에 유인,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훗날 주명 형제가 북송되었다가 살아 돌아오면서, 투먼 변방 구류소 벽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칼빈, 요한.”

주명 형제는 김권능 선생 팀 학생으로 모집되어 옌볜에서 중국 남방 도시 지난시로 내려오다가 열차에서 체포된 형제였다. 또 회령에서 온 북한 아주머니는 두 선생이 체포되어 나간 얼마 후 두 명의 청년이 기독교 사건으로 공개 총살당했다고 전해 주었다. 그 아주머니로부터 처형된 두 청년의 신상을 자세히 물으니 분명히 진칼빈 선생과 박요한 선생이었다.

순교자로 남은 박요한 선생

박요한 선생은 처음 사역장에 왔을 때 성경을 배우려는 마음보다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더 컸던 사람이었다. 힘과 주먹으로 살아온 세계에서 왔고, 처음에는 사역장의 질서와 훈련을 견디지 못해 고함을 지르며 힘들어했다.

그러나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그는 달라졌다. 늦게 시작했지만 남보다 몇 배로 반복했고, 밤늦게까지 말씀을 암송하며 성경을 배웠다. 마침내 그는 북한선교사로 세워졌고, “북조선의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폭탄이 되겠다”고 고백했다.

그는 진칼빈 선생과 함께 파송되어 사역하다가 북한 보위부에 의해 유인, 납치되었다. 이후 전해진 증언들은 두 선생이 기독교 사건으로 공개 처형되었음을 가리킨다. 박요한 선생은 그렇게 북한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린 순교자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