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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예상자

Yong-seop Lee

이용섭

선교사 · B-10

이용섭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군수공장 간부였다가 사역자로 나서, 자기 순서는 뒤로 미룬 채 북한 형제 50여 명을 한국으로 구출했다. 2001년 말 붙잡혀 2005년 비밀리에 북송되었고, 그 뒤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지역
중국
순교 사유
북한 선교 사역 중 억류
기록 요약
2기 청진 군수공장 간부 · 2005년 비밀 북송
구분
중국 1차 사역 관련 순교예상자 / 최바울 선생 사역장 이후 파송 사역자
관련 사역장
최바울 선생 사역장, 산시성 시안시 사역장, 옌볜 학생 모집 및 한국 구출 사역
주요 키워드
함경북도 청진시, 북한 군수공장, 박격포·방사포, 최바울 선생 사역장, 시안 체포, 도문 변방 구류소, 정치 난민 청원서, 지린성 창춘시 철베이 감옥, 2005년 비밀 북송
기록 성격
이미지 자료 기반 회고록 정리 — 본문, 편지글, 정치 난민 청원서, 사진자료 캡션 분류

2기 · 사역 기록

순교의 발자취

오십여 명을 한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남은 마지막 한 사람

함경북도 청진 출신, 군수공장 간부였던 사람

이용섭 선생은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이다. 탈북하기 전 북한 군수공장에서 박격포와 방사포를 만들었고, 자신에게 동원되는 노동자들을 총괄하는 간부로 일했다. 그는 북한이 숨기고 싶어 하는 무기 생산 산업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중국에 나온 뒤 1기생 최바울 선생을 만나 우리 사역장에 들어왔다.

북한 정권의 잔혹함을 누구보다 깊이 알던 사람

이용섭 선생은 간부 생활과 무역 일을 하면서 북한 정권의 잔악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때문에 일반 탈북자들보다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가 극심했다. 그럼에도 사역장에 들어온 뒤에는 휴식 시간이 되어도 쉬지 않고 조용히 기록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바울 선생 사역장에서 성경 100독과 수백 절의 말씀 암송을 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최바울 선생이 떠난 뒤에도 끝까지 남은 사람

이용섭 선생을 지도하던 최바울 선생은 훗날 사역을 포기하고 떠났다. 바울 선생이 떠나자 그 밑에서 배우던 형제들도 흩어졌다. 그러나 이용섭 선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마쳤고, 성공적으로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아 2000년 8월 옌볜으로 파송되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사역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산시성 시안시 사역장을 시작하다

이용섭 선생은 함흥 화학공업대학을 졸업한 신수재 형제, 임정철 아바이를 비롯한 북한 형제 4명과 조선족 형제 1명을 모집해 산시성 시안시로 돌아와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사역을 매우 성실하게 수행했다. 함께한 학생들이 훈련 강도가 너무 심하다고 호소할 정도로, 성경 통독과 말씀 암송을 철저히 진행했다.

학생 모집 방식의 변화와 조용한 확장

1기, 2기, 3기생 선생들이 파송되어 학생을 모집해 오던 시기에는 많은 선생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되었다. 그래서 학생 모집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했다. 선생들이 직접 학생을 모집해 데려오는 방식은 위험이 컸고, 보위부의 표적이 되기도 쉬웠다. 이 일에 가장 적격인 사람이 이용섭 선생이었다. 그는 무역을 해 본 사람이어서 매사에 주도면밀했고 실수가 없었다.

옌볜에서 매주 새 사역장을 세운 사람

이용섭 선생은 사역을 중도에 마무리하고 조용히 옌볜으로 올라가 학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주에 10명 정도의 학생들을 꾸준히 데려보냈고, 매주 새로운 4기 사역장이 하나씩 생겨났다. 더 이상 선생들이 체포되지 않았고, 4기 사역장들도 안정적으로 확장되었다. 말없이 움직였지만, 그가 감당한 역할은 사역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001년 6월 11일, 시안에서의 체포

2001년 6월 11일 이용섭 선생은 1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산시성 시안시로 내려왔다. 오랫동안 위험한 옌볜에서 활동하다가 안전한 시안으로 와서 잠시 쉬고, 사역장 이사 문제도 돕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그날 나는 모든 사역장 팀장들을 식당에 모이게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우리는 중국 공안에게 체포되었다. 모든 북한 형제들과 선생들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 도시인 도문시 변방 구류소로 호송되었다.

도문 변방 구류소와 북송 위기

도문 변방 구류소는 중국에 체류 중인 탈북자들을 가두었다가 북한으로 송환하는 곳이었다. 북송되면 선교사로 임명되어 활동했던 사람들은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위험이 컸다. 나는 체포된 북한 형제들을 구출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북한선교 담당자와 여러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치 난민 청원서와 마지막 구명 노력

감옥에서 이용섭 선생은 정치 난민 청원서를 보냈다. 청원서에는 자신이 중국 내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고, 이미 함께 잡혀간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을 조선 경내가 아닌 한국을 비롯한 제3국으로 추방해 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그 청원서를 가지고 가능한 모든 곳을 찾아다녔다.

도문에서 석방된 뒤 곧바로 다시 시작한 사역

나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중국 공안 간부에게 주며 14명의 북한 선생들만은 구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중국 공안은 김성근, 이용섭, 유기풍 등 일부만 내주었다. 그렇게 해서 이용섭 선생은 북한으로 끌려가지 않고 도문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곧바로 다시 사역을 시작했다. 체포되지 않고 흩어졌던 형제들을 수습했고, 북한으로 끌려간 선생들을 대신해 다시 학생들을 모아 사역장을 재건했다.

한국 구출 사역의 핵심 역할

북한 보위부는 도문에서 김성근, 이용섭, 유기풍 세 명의 선생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고 다시 이들을 잡기 위해 사람을 중국으로 들여보냈다. 이제 중국에서의 사역은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이용섭 선생과 나는 북한 형제들과 선생들을 한국으로 구출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내가 한국에서 구출 자금을 모아 보내면, 이용섭 선생은 그 돈으로 한국으로 가는 팀을 만들었다. 그의 활약으로 50여 명의 북한 형제들과 선생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역장 선생들과 학생들이 이용섭 선생에 의해 구출되었다.

마지막 팀을 데리고 자신도 한국으로 가려던 길

2001년 12월 14일 이용섭 선생은 마지막 선생들과 학생들까지 한국으로 구출시키고 자신도 한국으로 떠나려던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는 길림성 변방대에 붙잡혔다. 용섭 선생은 그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고 북한 형제들을 구출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국 구출 사역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사를 받으며 그의 활동은 결국 드러났다.

지린성 창춘시 철베이 감옥에서의 재회

2004년 4월 13일, 이용섭 선생은 김권능 선생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지린성 창춘시 철베이 감옥으로 호송되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생활했다. 중국은 자국 내에서 범죄 활동을 하다가 판결을 받고 형을 마친 탈북자들은 형을 마쳤다는 이유와 관계없이 북한으로 추방한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많은 탈북자들을 남한으로 구출시킨 이용섭 선생을 북한 정부가 그냥 둘 리 없었다.

북송을 막기 위한 시도와 무너진 기대

이용섭 선생의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다. 그를 납한으로 추방시키려는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유엔에 희망을 걸고 감옥에서 정치 난민 청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9월 28일, 형기가 9개월이나 남아 있었는데도 중국 공안은 이용섭 선생을 비밀리에 북송시켰다. 김권능 선생이 보는 앞에서 손과 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 나갔다.

2005년 비밀 북송과 끊어진 소식

북한 보위부는 이용섭 선생을 특별히 다루었다. 일반 보위부에서 심문하지 않고 청진시에 있는 비밀 조사소로 데려갔다고 전해졌다. 조용히 처리되는 곳이었고, 당시의 정확한 소식은 확인하기 어렵다. 그가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갔다는 말도, 여전히 북한 어딘가에 있다는 말도 들려왔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피는 받으시되, 무고한 그의 자녀들에게는 축복으로 임하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살고 싶었으나 형제들을 먼저 살린 사람

이용섭 선생은 정말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매번 자기보다 더 살고 싶어 하는 북한 형제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순서를 뒤로 미루었다. 결국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자신은 북한으로 끌려갔다. 짧은 인생이지만 북한 땅과 사역장, 감옥의 현장에서 그의 이야기는 복음이 살아 움직였다는 증언으로 남았다.

사모님께 보낸 편지와 남겨진 흔적

이용섭 선생은 사모님께 편지를 남겼다. 편지에는 가정과 자녀를 뒤로하고 북한 복음화와 탈북자 사역을 감당하는 사모님을 향한 감사와 존경, 그리고 북한 땅의 복음화를 위한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을 “탈북자 리용섭”이라고 밝히며, 사모님의 건강과 자녀들, 사역장을 위해 기도한다고 썼다. 이 편지는 그가 남긴 신앙과 마음을 오래도록 느끼게 해 주는 귀한 자료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마지막 편지

정치 난민 청원서

정치 난민 청원서저는 1999년 9월 중국으로 비법 월경한 후 중국 경내에서 조선에서 금지되어 있는 종교, 곧 기독교 활동을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다가 2001년 6월 11일 산시성 시안시 공안국과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변방대에 의해 50여 명의 조선인 탈북자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그때 체포되어 조선으로 넘겨진 인원 중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조철석, 정용철, 리걸수 선생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는 중국 경내에서 조선인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비법 월경 조직과 종교 활동이 중국 경내에서는 형사 범죄에 속하지만, 조선에서는 정치적 탄압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현재 철북 감옥에서 복역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형기 완료와 함께 조선으로 추방됩니다. 이런 조건에서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하여 중국 사법부가 저의 정치 난민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여 주시기를 청원합니다. 저는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있는 중국 사법부가 정부의 인도주의적 정책과 연합국 난민 협약 안에 있는 규정에 따라, 제 생명과 신앙의 안전을 고려하여 조선 경내가 아닌 한국을 비롯한 제3국으로 추방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모님께 올린 편지

사모님께 올립니다.안녕하십니까.빈곤하신 시부모님과 재롱 속에서 한창 뛰노는 자녀들과 함께하여 주님께 가정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산 설고 물 선 이역 땅에 와서 가정의 주부로서뿐 아니라 북한 선 복음화와 탈북자 사역을 최광 선생님과 함께 이끄시는 사모님께 탈북자 리용섭 문안 인사드립니다.오늘도 저희들은 사모님의 굳은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이 펜을 들었습니다. 권사님과 최광 선생님 사모님이 주님의 제단에 자신과 가정의 모든 것을 바치고, 그토록 애쓰는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때로는 세상의 유혹과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주님 앞에 바로 서 있지 못하는 자신들을 생각하면서 돌이키는 저희들입니다.최광 선생님을 통하여 가정 사역장의 행복한 성장을 가끔씩 듣습니다. 가정 사역장의 그 행복의 웃음꽃 바탕에는 사모님의 정성과 사랑, 그리고 탈북자 사역을 통하여 북한 선 복음화를 위한 사모님의 신앙을 저와 사역장의 모든 선생님들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봅니다.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으리라 봅니다. 주님의 그 사랑과 은혜의 마음으로 탈북자 자매분들과 자녀들, 동역자의 보따리들의 마음과 뜻을 하나로 이끌면서 어려운 그 모든 것을 다 참으며 헤쳐 나가시는 사모님과 나의 신앙의 차이를 놓고 볼 때 저절로 머리 숙여집니다.그때마다 귀하신 주님의 일꾼들로 탈북자 사역을 맡겨 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빈곤하신 권사님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또 귀하신 자녀분들은 어느덧 다섯 달이 되어 오고 보니 몸이 무척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자녀분들을 통하여 두고 온 자녀들을 생각하며 힘을 얻고 일어섰던 때가 항상 그리워집니다.권사님 지금 누구도 북한 사역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이때 최광 선생님이 이 사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으니 권사님과 사모님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 북한 땅의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능력으로 하루빨리 복음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한 나라가 되어 주님을 찬양하는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권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한 온 가족 일동 모두가 건강한 몸으로 주님의 일을 더 잘 감당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최광 목사님을 많이 도와주십시오. 많은 영혼들을 주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그럼 권사님의 몸 건강과 주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라면서 안녕히 계십시오.탈북자 리용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