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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예상자

Gi-cheol Kim

김기철

선교사 · B-14

김기철

평양 과학기술연구소 지질학 선임 연구원으로 일하다 1998년 두만강을 건넜다. 산시성 시안에 사역장을 세워 사역하던 중 2001년 체포·북송되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

지역
중국
순교 사유
북한 선교 사역 중 억류
기록 요약
평양 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 · 정치범 수용소
구분
중국 1차 사역 관련 순교 예상자 / 2기 북한 선교사 훈련생
관련 사역장
최순교 선생 사역장 / 김권능 선생 사역장 / 산시성 시안시 사역장
주요 키워드
평양 과학기술연구소, 지질학 선임 연구원, 성경 통독, 성막 강의, 화산 임명식, 산시성 시안시 체포, 정치범 수용소
기록 성격
이미지 자료 기반 회고록 정리 — 본문, 편지글, 사진자료 캡션 분류

2기 · 사역 기록

순교의 발자취

정치범 수용소로 가기 전 쓴 신앙고백의 편지들

평양 과학기술연구소 출신 지식인

김기철 선생은 2기생 최순교 선생이 학생을 모집하러 나갔을 때 데리고 온 사람이다. 그는 북한에서 평양 과학기술연구소 지질학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던 지식인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카이스트와 비슷한 성격의 연구기관에서 일한 셈이었고, 북한 정부에서 연구에 필요한 배급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굶주림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식량난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은 굶주렸고, 결국 그는 1998년 두만강을 넘어 탈북했다.

중국 연변의 시골 마을에서 사역장으로

중국으로 넘어온 뒤 김기철 선생은 옌볜 지역의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최순교 선생을 만났다. 최순교 선생은 그를 사역장으로 데리고 왔다. 당시 사역장에는 여러 탈북 형제들이 함께 있었고, 그는 나이가 비교적 많고 지식도 많은 사람이었기에 처음부터 독특한 존재감을 보였다. 자료에는 그가 “북한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담배와 고집,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

김기철 선생은 처음 사역장에 들어왔을 때 담배 문제로 자주 어려움을 겪었다. 최순교 선생이 담배 피우지 말라는 의미로 형제들의 돈을 모두 걷어 두었지만, 김기철 선생은 어디에 돈을 숨겨 두었는지 계속 담배를 사서 몰래 피웠다. 머리가 비상했고 자기 방식이 분명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유순하고 미워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지식인의 자존심과 탈북자의 고단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사역장의 훈련과 충돌

사역장 생활이 이어지면서 김기철 선생은 순교 선생에게 술과 담배 문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예수님도 술을 마셨고 담배를 피웠다면 왜 우리라고 담배를 피우면서 공부하지 못하느냐는 식으로 따졌다. 순교 선생이 받아 주지 않자 효선 형제, 소망 형제, 인철 형제, 예진 형제들과 논쟁을 벌였고, 결국 이 문제로 한동안 사역장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은혜를 경험했고 행동이 차분해졌다.

성경 암송으로 김의환 총장을 놀라게 하다

김의환 총장이 사역장에 와서 북한 형제들에게 세례를 주기 전, “북한 탈북자가 어떻게 탈북자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가졌다. 총장은 최순교 선생 사역장 형제들에게 성경과 교회에 대해 질문했다. 그때 김기철 선생은 손을 들고 성경 말씀과 교회에 관한 내용을 줄줄이 대답했다. 이를 본 총장은 김기철 선생을 가리키며 “정말 가르치긴 가르친다. 정말 희한한 녀석이다”라고 감탄했다.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세워지다

순교 선생 사역장 형제들이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던 날, 우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산시성 화산에 올랐다. 화산 정상에서 모두가 기도 모임을 가졌고, 김기철 선생도 높은 산을 끝까지 올랐다. 많은 선생들이 설교를 했지만 김기철 선생이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며 찬송하던 모습이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자료 사진에는 화산에서 함께 찍은 기념사진과, 오른쪽 인물이 김기철 선생이라고 설명된 사진이 남아 있다.

최순교 선생 팀의 파송과 시안 사역

김기철 선생이 학생 모집을 마치고 사역장에 도착한 뒤, 나는 2기생 선생들을 데리고 미중 나가 기철 선생과 함께 온 학생들을 환영해 주었다. 기철 선생에게 업혀 제4기 사역이 시작되었고, 기철 선생은 산시성 시안시에 사역장을 잡고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북한에서 고위급 연구원으로 있었던 경험 때문에 북한의 내부 사정과 비밀을 많이 알고 있었고, 그만큼 북송되면 큰 위험에 처할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학생 모집, 할머니 집 예배, 그리고 첫 충돌

연변으로 파송받은 최순교 선생 팀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열차에서 최효선 선생과 조흥희 선생이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되었고, 연길에 도착했을 때에는 조선족 이우설 선생 누나 집에 머물며 학생 모집을 시작했다. 김기철 선생은 시골 할머니 집에서 예배를 드리며 학생을 모집해 왔다. 그 할머니가 자기 딸을 함께 데려오지 않으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하자, 그는 할머니와 딸을 같이 데려오겠다고 했고, 이 문제로 사역 원칙과 충돌했다. 결국 학생들만 데리고 내려오게 했다.

성막 강의와 깊어진 말씀 이해

김기철 선생은 최도우심 목사의 성막 강의를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강의에도 북한 형제들은 말씀을 전혀 달라지지 않고 들었다. 김기철 선생은 지적인 이해력이 뛰어났고, 최 목사의 강의를 들은 뒤에는 성경과 복음의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자료에는 최 목사가 김기철 선생의 설교를 듣고 “북한 선생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십자가의 사랑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장면도 담겨 있다.

세례와 신앙 고백

김의환 총장에게 세례를 받은 뒤 김기철 선생은 점차 신앙 안에서 달라졌다. 처음에는 담배와 자기 주장이 강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순해졌고 자기의 고집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북한 형제들처럼 빠르게 암송하고 통독하며, 북한 선교사로 세워지는 길을 걸었다. 사역장의 사진에는 그가 세례를 받는 모습과 화산 임명식 이후의 모습이 함께 남아 있다.

서안 체포와 북송

2001년 6월 11일 김기철 선생은 사역장 전체 팀장들이 호텔 식당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던 날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북한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북송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그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북송되었다. 훗날 북송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형제들은 팀장을 맡았던 모든 선생들이 12년에서 15년의 판결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순교 예상자

김기철 선생은 살아 돌아온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형은 면했지만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가 평소 걱정하던 일이 실제가 된 것이다. 이후의 생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체제 안에서 지식인으로 살다가 탈북했고, 중국의 사역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복음의 사명을 알게 되었으며, 끝내 북송의 위험 앞에서도 그 흔적을 남긴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마지막 편지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께 드린 편지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 앞

남효선 장로님과의 만남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98년 평양에서 죽지 못해 두만강을 넘었지만 이렇게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북한에 기근을 보내어 우리와 같이 비천한 것들을 불러낸 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습니다.

장로님, 오늘까지 저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통독을 120독, 말씀 암송 800절을 하고 있으며, 오늘도 최도우심 전도사님을 통하여 복음의 비밀과 성막의 깊은 비밀을 알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하루 빨리 영적으로 무지한 백성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장로님, 이제는 1일의 씨앗이었지만 오늘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큰 무리가 이루었으니, 이제 이 하나하나가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낼 북한 사역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서로 돕기 운동을 하여 북한을 물질적으로 도와준다고 하지만, 사도행전 6장 1-7절에 보면 믿는 무리가 커지고 구제도 많아졌으나 오히려 구제에 빠져 말씀이 약해지는 일을 경계해야 함을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며, 집사 일곱을 세워 구제의 일을 맡기고 기도와 말씀에 전무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목적을 붙들고 복음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취하고 있습니다.

장로님, 우리는 매를 기다리며 날마다 복음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복음을 위하여 오직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며, 이제 아버지 뜻에 따라 사역지 확장을 위하여 파송하게 되었으니 사탄의 유혹이 우리 마음속에 침습치 않도록 기도 많이 부탁합니다. 북한 개방이 언제 될지라도 때가 온 줄로 믿고 저는 우리를 위해 장로님과 사모님 기도 많이 부탁드리며 펜을 놓겠습니다.

우리도 주 안에서 날마다 소록도 북성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럼 장로님과 사모님의 건강을 빌며 펜을 놓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1년 1월 21일

김기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