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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예상자

Gyu-hong Kang

강규홍

선교사 · B-9

강규홍

탄광 노동자로 살다 1998년 탈북해 산시성 시안에서 사역을 시작했고, 전체 사역장을 관리하는 총팀장을 맡았다. 2001년 체포·북송되어 보위부 앞에서 조용히 믿음을 드러낸 뒤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지역
중국
순교 사유
북한 선교 사역 중 억류
기록 요약
탄광 노동자 · 총팀장 · 정치범 수용소
구분
중국 1차 사역 관련 순교예상자 / 김권능 선생 두 번째 팀
관련 사역장
김권능 선생 사역장, 산시성 시안시 사역장
주요 키워드
옌지시 이란진 산속 마을, 산둥성 지난시, 쓰촨성 청두시, 칭청산, 신장염, 시안 사역장, 화산, 도문 변방 구류소, 온성군 보위부, 정치범 수용소
기록 성격
이미지 자료 기반 회고록 정리 — 본문, 편지글, 사진자료 캡션 분류

2기 · 사역 기록

순교의 발자취

“예수 믿는 사람, 일어나라”는 엄포에도 조용히 일어난 청년

김권능 선생을 기다리던 산속 마을

김권능 선생은 처음 사역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포기하고 옌볜으로 돌아갔다. 학생들에게서 받은 심적 고통을 달래고 몸도 회복하려고, 옌지시 이란진 깊은 산속에 숨어 살고 계시던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것은 조용한 쉼터가 아니라 김권능 선생이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던 한 무리의 북한 탈북자들이었다. 그들은 갈 곳도, 할 일도 없었기에 언젠가 돌아온다는 김권능 선생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산속에서 숨어 살고 있었다.

쉬러 갔다가 다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온 김권능 선생

권능 선생은 난처했다. 쉬고 싶어서 온 것이지 학생 모집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당장 자신들을 데려갈 줄 알고 들떠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옷가지를 가방에 챙겨 넣고 언제 떠나느냐며 한 시간에 한 번씩 방문을 두드렸다. 결국 권능 선생은 산속 마을에 온 지 이틀 만에 쉬기를 포기하고 이들을 데리고 산둥성 지난시로 내려왔다. 강규홍, 정용철, 최순교, 김권위, 조선족 최원초, 최빌립 형제 등 9명의 형제들이 함께했다. 나는 권능 선생이 두 번째로 데리고 내려온 학생들을 지난시 산둥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났다.

경계심 많던 강규홍 선생과 신장염

강규홍 선생은 처음 보는 남조선 사람인 나를 겁먹은 눈으로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악수를 청해도 마지못해 손을 내밀고는 몇 발자국 멀어져 도망가 버렸다. 항상 나와 거리를 두려 했기에 나도 처음에는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새로 모집된 학생들을 쓰촨성 청두시로 내려보낸 뒤 다시 찾아가 한 사람씩 대화해 보니, 강규홍 선생만 유난히 몸이 부어 있었다. 물어보니 그는 신장염을 앓고 있다고 했다. 나는 호박, 미꾸라지, 옥수수수염차 같은 방법을 말해 주었지만, 그는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다만 기도해 보라는 말에는 묵묵히 들었다. 한두 달 후 그의 몸에서는 붓기가 많이 빠져 있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선생님, 저 기도 많이 했습니다. 생쌀도 많이 먹고 그랬더니 그냥 나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탄광 노동자 출신, 나이 많았지만 순종한 사람

강규홍 선생은 북한에서 탄광 노동자로 살았다. 1998년 5월 북한을 탈북해 옌볜의 깊은 시골 여기저기를 다니며 농사일을 하다가 김권능 선생을 찾아왔다. 사역장에 왔을 때 나이는 34세였고 권능 선생보다 10살이나 많았지만, 그는 항상 권능 선생을 존중했다. 성경을 처음 만나는 탈북자들에게 성경 통독은 큰 부담이었고 힘든 훈련이었다. 일만 하며 살던 강규홍 선생에게는 특히 더 힘든 일이었다.

통독 훈련과 조용한 성실함

처음에는 통독 시간만 되면 졸았다. 권능 선생은 나이가 많은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박수를 치며 깨웠지만, 계속 졸자 단호하게 일어나 서서 통독하라고 했다. 강규홍 선생은 처음에는 세수하러 가려 했다고 변명했지만 결국 서서 통독했다. 그 뒤부터는 졸음이 오면 스스로 일어나 서서 통독하며 훈련에 성실히 임했다. 그는 말이 별로 없었고 그저 열심히 공부했으며 사역장의 어린 학생들을 잘 섬겼다.

설 명절, 고향의 떡을 만들어 준 사람

사역장에 설 명절이 찾아왔다. 북한에서는 설 명절이면 인절미를 만들어 먹으며 즐겁게 보낸다고 했다. 중국이라 북한에서 먹던 떡을 살 곳이 없었는데, 장만식 아바이와 강규홍 선생이 팔을 걷고 나섰다. 쌀을 사서 불리고 가루를 내고 설 전날 밤을 새워 떡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 덕분에 우리는 밤 12시에 새해 예배를 드리고 고향의 떡을 먹으며 설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시안 사역장으로 파송되다

김권능 선생 팀이 옌볜으로 파송될 때 강규홍 선생은 남아서 성경을 더 공부했다. 이후 다른 팀과 함께 파송되어 이성주, 김광철, 양정수, 김영혁, 안국철, 김광호 등 7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산시성 시안시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훗날 그는 김성근 선생과 함께 전체 사역장을 관리하는 총팀장이 되었다. 3기 북한 선생들을 북한 선교사로 임명하는 예배를 드릴 때에도 그들을 인솔해 화산으로 올라갔다.

편안한 성품과 사역장 전체를 섬긴 역할

강규홍 선생은 성품이 좋아 아무하고도 다투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편하게 대했고 쉽게 마음을 열어 놓았다. 그는 김성근 선생과 함께 전체 사역장을 총괄하면서도 많은 일을 감당했다. 한국에서 강사 목사님들이 오실 때마다 사역장 안내를 맡았고, 각 사역장에 옷과 돈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일도 했다. 미국에서 나태효 목사님이 오셨을 때에도 그가 모시고 함께 다녔다.

김치 한 통에 담긴 고향의 위로

나의 모친 권사님은 김치를 담가 각 사역장에 나누어 주곤 하셨다. 중국에서 숨어 살던 탈북자들에게 김치는 고향 그 자체였다. 북한 형제들은 권사님이 담가 준 김치에 깊이 감사했다. 강규홍 선생은 그 김치를 받고 권사님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타향에서 김치를 먹으며 고향에 두고 온 친부모 같은 마음을 느꼈다는 고백과, 북한 땅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시안 호텔 식당에서의 체포

2001년 6월 11일, 우리 사역장의 모든 팀장 전원이 시안의 한 호텔 식당에서 중국 공안에게 체포될 때 강규홍 선생도 함께 체포되었다. 시안에서 사역장 전원이 체포되고 탈북자들만 가두는 특수 감옥인 도문 변방 구류소에 갇혔을 때 많은 형제들이 실족했다. 그러나 강규홍 선생은 잡히기 전이나 잡힌 후나 시종일관 같은 마음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 감옥 안에서도 기도했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으며, 실망하고 두려워하는 학생들을 위로하려고 애썼다.

온성군 보위부 앞에서 일어난 사람

강규홍 선생은 학생들과 함께 북한 온성군 보위부로 강제 북송되었다. 보위부로 끌려 들어간 순간 모든 선생들과 학생들은 삶을 스스로 포기했다. 두만강을 건너기 직전까지 하나님을 향한 일말의 기대를 가졌지만, 보위부 대원들이 이들을 접수한 순간부터는 모든 기대와 희망을 잃었다. 북한 보위부는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힘이었고, 아무리 담대한 사람도 그 앞에서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그때 보위부 간부가 물었다.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어나라!” 그 깊고 무거운 두려움 앞에서 모두 머리를 들지 못했다. 그때 정용철 선생이 일어났고, 강규홍 선생도 뒤따라 조용히 일어났다. 그는 시안에서 사역장들을 돌아다니며 일하던 그 자세 그대로 담담히 일어나 북한 보위부 간부를 바라보았다.

정치범 수용소로 이어진 순교의 길

보위부의 권세 앞에서 대항했던 대가는 무서웠다. 선생들은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강규홍 선생도 다른 선생들과 함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가 마음에 예수님을 품고 복음을 향해 담담하게 걸어간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아무도 그가 아직 그 안에서 살아 생존했다고 믿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남긴 흔적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기록을 남긴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마지막 편지

권사님께 드린 김치 감사 편지

권사님께 드립니다.권사님 안녕하십니까?오늘도 역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속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복음 사역을 하고 계실 권사님을 그려 보며 펜을 들었습니다. 권사님, 저희들은 최광 선생님을 통하여 권사님이 앓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지만 병문안을 가지 못하여 미안합니다.권사님, 이렇게 글로서 대화를 나누고 문안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권사님 몸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사모님과 동역자 사모님을 비롯하여 아이들도 다 건강한 몸으로 말씀 통독을 하고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겠지요? 권사님, 우리들도 다 건강한 몸으로 주님의 말씀 속에서 어엿한 주님의 일꾼으로 다듬어져 지금은 모두가 북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들도 몇 달 후면 파송되어 사역을 할 것 같습니다.이렇게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다듬어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또 권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한 온 가족과 사역장에서 올린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인 것입니다.권사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또 권사님이 보내 주신 김치를 먹으며 말씀 통독을 통하여 정말로 주님의 품은 말로 다 표현 못하며 이것이 진짜 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권사님, 우리가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의지할 곳이 없어 정말 벌레만도 못하고 마른 막대기와 같은 우리들을 주의 백성으로 택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키워 주신 그 사랑과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인간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권사님, 우리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복음의 사명자로 튼튼히 다듬어져 주님의 그 사랑과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권사님, 지금 누구도 북한 사역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이때 최광 선생님이 이 사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으니 권사님과 사모님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또 저 북한 땅의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저 땅의 기근과 저주를 끊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능력으로 하루빨리 복음의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한 나라가 되어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권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한 온 가족 일동 모두가 건강한 몸으로 주님의 일을 더 잘 감당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권사님, 최광 목사님을 많이 도와주십시오. 많은 영혼들을 주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그럼 권사님의 몸 건강과 주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라면서 안녕히 계십시오.권사님이 보내 주신 김치를 먹으며 고향에 두고 온 친부모님 같은 심정을 느꼈습니다. 권사님, 이렇게 순서 없이 쓴 편지를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타향에서 북한 탈북자 강규홍이 권사님에게 올립니다.2000년 6월 5일주님 안에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