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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Kwang-ho Joo

故 주광호

선교사 · B-1

주광호

1998년 첫 북한 선교 현장에서 만난 첫 북한 사역자. 옌볜·지린·지난 등지에서 탈북민을 발굴하고 사역장을 인도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감옥에서도 전도하던 중 순교했다.

지역
중국
순교 사유
북한 선교 사역 중 순교
기록 요약
1기 · 사역 초기 동역자 · 체포 후 소식 두절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1기)
주요사역지역
옌볜, 지린, 지난, 정저우, 시안 등 중국 내 탈북민 사역 현장
주요역할
탈북민 발굴·연결, 사역장 인도 및 운영
최종 기록
탈북민 사역을 돕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고, 여러 증언을 통해 감옥에서도 전도 활동 중 순교로 추정

1기 · 사역 기록

순교의 발자취

1998년 지린에서 만난 북한선교의 첫 동역자

지린에서 만난 첫 북한 사역자

1998년 8월 8일, 나는 김포공항에서 중국 지린성 창춘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북한 선교 현장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이제 처음으로 만나게 될 북한 형제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북한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하는데 뭐가 빨갱이일까?”, “눈이 벌개서 빨갱이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주광호 선생이 있는 지린시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다.

긴장된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키가 175cm가 넘어 보이고 어깨가 넓어 보이는 주광호 선생이 문을 열어 주었다. 나의 첫 인상에 비친 그는 북한군 장교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시오, 최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는 여러 명의 북한 형제들과 조선족 형제가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는 성경통독과 북한선교 사역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자리였지만 그는 사역의 주도권을 잡고 내게 북한선교의 현실과 방향을 설명해 주었다.

북한의 현실을 알려준 사람

주광호 선생은 나에게 북한의 반기독교 교육 실태와 북한 정부가 외국으로 나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교회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교회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오해를 알려 주었다.

그는 북한 형제들의 눈빛, 말투, 사고방식, 보위부가 활동하는 방식, 중국 조선족 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북한선교는 단순한 동정이나 구호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정말 엉망이었지만 사역은 진행되면서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 후부터는 북한선교 사역을 시작하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역과 순종의 훈련, 복음 전도 방식, 북한 사람을 대하는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탈북 형제들을 향한 사랑과 동역

주광호 선생은 북한 형제들을 도와주려고 나와 함께 옌지, 왕칭, 도문, 개산툰 등 많은 지역을 다녔다. 탈북자들을 만나면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고, 그들을 만나면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말했다.

중국 공안의 호구조사와 탈북자 단속이 심해질 때도 주광호 선생은 북한 형제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호구조사가 심해져 장기 묵상이 필요해졌을 때, 그는 “안전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겠지만 당장 떠나서 집을 장만할 돈이 없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문제 앞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사역이 멈추지 않도록 애썼고, 사역자와 탈북 형제들이 함께 버틸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다.

백두산 기도모임에서 이 시간도 북한으로 특송을 드리고 있는 모습

청년 미션 홈과 장기 금식

바닷가 옆 30층짜리 빌딩 22층에 위치한 청도 한인교회 청년부 미션 홈은 조건이 좋았다. 꿈이었다. 북한 형제들의 열성이 더해지자 한인교회 청년들도 마음을 열고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아파트를 오래 비워두면 관리가 들어오고, 한국 선교사들이 머무는 일이 눈에 띄면 곧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주광호 선생은 계단이나 창문을 열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고함을 지르는 북한 형제들을 보며 조심을 당부했다. 나도 아이처럼 들떠 있는 형제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몰라 마음을 졸였다.

한편 주광호 선생은 사역자들과 함께 장기 금식에 들어갔다. 사진 자료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지린에 있는 사역장에 도착하여 15일간 장기 금식을 하고 백두산 시계탑 부근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 남아 있다.

탈북자들의 자립을 위한 노력

당시 중국에는 탈북자가 많았다. 의지할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탈북자들이 많았고, 10원의 차비가 없어 북한 형제들이 노숙하는 일도 흔했다. 많은 탈북자들이 갈 곳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다가 주광호 선생과 의논했다. 주광호 선생은 기뻐했다. 그는 북한군에서 작업복을 만들던 일을 하던 사람을 떠올렸다. “낮에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밤에는 의복 부업은 좀 있지만 공장을 벌려 가지고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는 탈북자들이 찾아오면 공장 사장에게 보내고, 공장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생각했다. 탈북자들이 숨어 들어가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기술을 배우게 하며,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 했다. 주광호 선생은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 여러 조건을 생각했고, 사역과 자립이 함께 가는 방법을 모색했다

사역장에서 식사를 하는 북한 형제들. 중국 아파트들은 대부분 인테리어가 되어 있지 않아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야 했다

한계를 넘어선 북한선교의 비전

주광호 선생은 북한선교와 세계선교를 함께 생각했다. 그는 북한 사역이 단지 북한 사람을 먹이고 보호하는 일에만 머물 수 없다고 보았다. 북한 사람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현시대는 개혁의 시대이며 개혁을 통하여 새로운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교회와 사역이 낡은 틀에만 갇히면 안 되고, 북한선교도 현실을 직면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씀 중심의 신앙, 기도, 교회의 회복을 강조했다. 중국 조선족 교회든, 북한선교 현장이든, 사역의 출발점은 말씀과 기도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편지 속에도 그런 문제의식과 사명감이 드러나 있다.

감옥에서도 신앙을 지킨 주광호 선생의 아내 윤영옥 선생

주광호 선생의 부인 윤영옥 선생은 북한 보위부 건물 안에서도 전도를 쉬지 않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보위부에 붙들려 갔지만 하루에 한 시간도 자지 않고 계속 움직이며 기도했고, 보위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보위부 사람들은 협박으로 그녀의 신앙을 꺾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너는 출신 성분도 좋고 죄도 크지 않으니, 남한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풀어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나 윤 선생은 “내가 예수님을 알고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은 나를 한 번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나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선생님도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2001년 사역장들이 시안에서 전부 공안에 체포된 후 나는 한국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그 후 2008년 4월 한국에 온 윤 자매가 주광호 선생과 윤영옥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윤 자매는 평양에서 사역을 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그 안에서 말씀을 통해 변화되었다. 그는 광호 선생과 영옥 선생에게서 받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한 증언은 배영호 목사, 송혜연 목사, 최혜성 전도사 등 여러 명의 탈북민 목회자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납치와 순교의 길

영옥 자매는 북한 형제들과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얼마 후 주광호 선생도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북한에서는 특별 호송 요원들이 중국까지 들어와 압송해 갔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중국에서 살고 있다고 추정이 되지만, 그 후 지금까지 나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들은 바로는 중국 동북 지역 인근 집단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찾을 수만 있다면 한국으로 데려와서 내가 돌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광호 선생과 그 부인 영옥 선생이 순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순교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삶을 보면 주님께서 그들을 순교자의 반열에 세우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주광호 선생이 남긴 사람들

당시 북한 탈북자들에게 성경통독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이 흔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광호 선생을 통해 사역을 보게 되었다. 그는 말보다 삶으로 북한선교의 필요와 방향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는 탈북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설교할 때마다 자주 울었고, 탈북자들을 구원하고자 애썼다. 그의 마음은 주님의 눈물과 사랑이 있었다. 그가 보여준 진심은 훗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북한선교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주광호 선생은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제자들에게는 그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주님께 감사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 큰일을 했는지 나는 보았다. 주광호 선생, 그는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아름다운 사람이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마지막 편지

주광호 선생의 사모님께 보낸 편지 (1998.11.23)

사모님을 비롯한 온 집안 식구들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을 보니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 되어 있더군요. 이 말씀의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 저희 마음을 불러주셨으니 나와 참 아버지 하나님은 저희 마음의 깊은 곳까지도 알아주시며 동행하시는 하나님임을 증명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요즘 중에 제일 미약하고 미약한 것이 무엇임을 아십니까? 바로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사모님께 한 줄 쓰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 없어 한 장 서툰 글을 올립니다. 온 집안 식구들은 다 무고하시겠죠? 저는 전우의 문제가 100%에 가까워졌습니다.

예수 믿고 예수님 따르는 이 길이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번 어려운 일을 통하여 외롭고 힘든 길이라는 것을 더욱더 절감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느끼게 되니, 북한 복음화를 위하여 이 몸을 불러주시는 것과 또 그릇으로 사용하시려고 계획하신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배운 좋은 최광 전도사님과 베드로 목사님을 통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시고, 기꺼이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북조선 사역을 감당하느냐 못 하느냐, 세계 선교를 감당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환경적이며 사역적인 문제도 있고, 이 사역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북조선은 사망의 요충지입니다. 그 사역과 함께 사탄은 별의별 모양과 방법으로 헌신자들을 거리끼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깊은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새 힘을 주시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새 영혼을 매일매일 보내시는 하나님의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형제들이 성경 첫독 읽기에서 남은 날로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진정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말씀 없이 죽어가고 있는 북한과 많이 부패되어 있는 중국 조선족 교회들, 말 없는 것이 많이 안다고 하면서도 말씀과 너무 떨어져 성령 충만을 하고 있는 한국의 주의 종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금방 마음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돌아와야 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보지도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단순히 제일 깊도록 품겠기에 앞서 주신 것이라 봅니다. 요즘에 우리 사역장은 세상 눈으로 보면 너무나 협악하나 그리스도의 기쁨과 희망이 겉으로 넘치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사모님을 비롯한 온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축원하며 이만 여기서 맺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8. 11. 23 주광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