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온성군 출신, 두려움 속에 숨어 살던 사람
정모세 선생은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사람이다. 북한에 있을 때 온성군 사람들조차 그의 이름을 모를 정도로 소문만 무성한 인물이었다. 일반 탈북자들처럼 먹을 것이 없어 국경을 넘은 사람이 아니라, 북한에서 지은 죄가 크고 정치범 수용소나 처벌을 두려워해 중국으로 도망 온 사람이었다. 중국에 온 뒤에도 그는 연길의 조직폭력단 속에서 강도, 마약 밀매 등 나쁜 일에 연루되며 살았다.
Mo-se Jeong
선교사 · B-11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몸을 숨길 곳을 찾아 사역장에 들어왔다가 말씀 앞에서 변화되어 북한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그러나 파송 뒤 갑자기 연락이 끊겼고 행방은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2기 · 사역 기록
마약 조직에서 도망쳐 순교를 각오한 사람
정모세 선생은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사람이다. 북한에 있을 때 온성군 사람들조차 그의 이름을 모를 정도로 소문만 무성한 인물이었다. 일반 탈북자들처럼 먹을 것이 없어 국경을 넘은 사람이 아니라, 북한에서 지은 죄가 크고 정치범 수용소나 처벌을 두려워해 중국으로 도망 온 사람이었다. 중국에 온 뒤에도 그는 연길의 조직폭력단 속에서 강도, 마약 밀매 등 나쁜 일에 연루되며 살았다.
정모세 선생은 조직의 마약을 팔던 중 실수로 돈을 잃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저기로 숨어 다니다가 깊은 산속에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부터 신앙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숨길 곳을 찾기 위해 김권능 선생의 사역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역장은 그에게 은신처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곳을 통해 그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 시작하셨다.
정모세 선생은 키가 1.5m 남짓한 작은 체구였지만 싸울 때는 매우 무서운 사람이었다. 북한 형제들과 축구를 하다가 권위 형제와 다툼이 벌어졌을 때, 순식간에 싸움으로 번질 만큼 성질이 거칠었다. 주위에 놓인 맥주병을 잡고도 실제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그 눈빛과 분위기만으로도 사람을 떨게 했다. 그는 사람을 찌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고, 내가 알고 있던 어떤 북한 사람보다 거칠고 사나운 인상을 주었다.
처음 사역장에 숨어 살기 위해 들어왔던 정모세 선생은 성경 공부와 하나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영적인 세계에 관한 이야기도 허무맹랑하게 여겼다. 그러나 다윗 형제가 귀신 들린 모습을 보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진지하게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고, 사역장의 훈련과 말씀 앞에서 조금씩 변화되어 갔다.
나는 한국으로 사역비를 모금하러 가는 길에 김권능 선생 사역장에 들렀다. 당시 사역장은 늘 부족했고, 북한 형제들을 먹이고 훈련시키는 일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정모세 선생을 비롯한 형제들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강도, 살인, 마약 등 거친 삶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정모세 선생은 북한 선교사로 파송받아 옌볜으로 떠나기 전에 울산교회 정근두 목사님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1997년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탈북한 정철이라고 소개하며, 최광 선생님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북한 땅의 백성들이 감옥과 빈궁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음을 전하며, 한국 교회가 북한 복음화와 탈북자 사역에 동참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
청도한인교회 김무종 목사님이 청도에서 성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 김권능 선생 사역장의 파송 예배를 인도했다. 예배가 끝나자 북한 선생들은 “오! 파송이다. 만세, 만만세!”를 외치며 열광했다. 정모세 선생은 방 안에서 북한 사람 특유의 춤을 추며 기쁨을 표현했다. 장만식 아바이는 울면서 그동안의 수고와 고생을 떠올렸고, 학생들은 김권능 선생을 향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했다.
나는 파송을 앞둔 북한 선생들에게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는 구호를 따라 하게 했다. 사역장 안에서 보호받고 공부하던 시간은 끝났고, 이제는 각자의 사역지에서 조심스럽게 학생을 모집하며 살아야 했다. 나는 같은 동족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믿지 말고, 북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1기생 선생들이 파송 사역 중 겪었던 위험과 실종 사건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정모세 선생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한국에 가면 아편 좀 팔 수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북한에서 이미 아편에 손을 댔던 경험이 있었고, 돈만 있으면 아편을 구해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서 그의 말을 크게 꾸짖었다. 그러나 훗날 그가 남긴 편지를 읽으며, 그것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사역비를 돕고 싶었던 그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정모세 선생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말씀을 읽는 태도와 기도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성경이라는 말을 인정하면 말씀을 읽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신비한 힘을 인정해야 했고, 그는 그 힘 앞에서 조금씩 무너졌다. 기도할 때 진지해졌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거친 언어와 태도도 점차 변해 갔다. 겉으로는 여전히 험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며칠 후 김권능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모세 선생이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한 주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그가 삼도구 아주머니 집에 갔다가 며칠 전 급히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만 들렸다. 정모세 선생이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는지, 공안 쪽으로 알아보러 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후 그는 더 이상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정모세 선생이 북한으로 체포되어 나갔다면 그는 처형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북한에서 지은 죄가 많았고, 중국으로 탈북한 죄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어떤 길을 걸었는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김진칼빈 선생, 박요한 선생에 이어 우리 사역장에 남겨진 또 하나의 빛이었다. 세상에서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해도, 주님은 그 별을 품으시고 영원토록 빛나게 하실 것이다.
육성 그대로
울산교회 정근두 목사님 귀하할렐루야.목사님 안녕하십니까?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주님께 주신 사명을 위해 가고 있는 울산교회 정근두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저희들의 인사를 드립니다.저는 1997년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살다가 탈북한 정철이라고 합니다. 한 번 본 적도, 만나서 대화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최광 선교사님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신으로 교제를 나누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라고 봅니다.목사님, 정말 저희들과 동참해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목사님, 저희들이 언제 이런 참 사랑을 맛보았겠습니까.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야 참 사랑을 맛보고 인생의 참다운 삶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맛보니 자신의 지난 생활과 북조선의 동포들을 위해 늘 기도합니다.하나의 강토가 두 나라로 갈라져 민족의 설움에 잠겨 있습니다. 한국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날로 부흥되어 가고 있지만, 북한 땅은 주님의 징계와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제 통치와 6.25전쟁, 오늘까지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 민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고, 오랜 참고 방자의 아버지처럼 이 민족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목사님, 지금 북한 땅의 백성들은 철창 없는 감옥에서 빈궁 속에 헤매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고, 집이 없어 방황하다 얼어 죽고, 맞아 죽고 날마다 지옥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아이들까지 잡아먹는 형편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산에 가면 나무껍질과 풀뿌리, 밭뿌리까지 먹고 살지만 위에 있는 간부들은 호화롭게 살아갑니다.목사님, 저희들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아무런 근심과 염려가 없이 오직 말씀에 전심전력하고 있습니다. 내 나라 내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주님의 십자가 군병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말씀 통독 구약 15독, 신약 120독, 말씀 암송 400절로 나가고 있습니다.저희들은 이 사역을 환히 내다보고 있습니다. 항상 주님이 지켜 주고 보호하여 주시지만, 저희들은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북조선 복음화를 위하여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파송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목사님,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물질로도 후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들은 3기 사역 때문에 파송됩니다. 비록 저희들 앞에 고난도 있고 환난도 있고 죽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목사님, 그것은 항상 우리 주님의 지혜와 성령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원한 집, 아버지의 품이 있으니 죽음도 무섭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언제라도 순교 제물로 산제사로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목사님, 저희들의 제일 급선무는 사역비가 제일 걱정입니다. 우리 최광 선생님이 혼자서 이 사역을 감당해 나가느라고 늘 고생 속에서 눈물 속에서 이 사역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선교사님들처럼 명분 사역을 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명분 사역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저희들의 사역은 비밀 사역이기에 힘이 너무나도 듭니다.목사님, 저희들과 동참하여 북한 복음화의 이 사역에 헌신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무나도 순서 없이 쓴 글을 잘 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과 울산교회 성도님들에게 주님의 축복과 울산교회에 더욱 큰 부흥이 있기를 바라며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2000년 4월 15일탈북자 정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