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윗 선생이 데려온 조용한 청년
요한 형제는 2기생 박다윗 선생이 연길로 파송되어 사역하던 중 데려온 북한 출신 청년이었다. 그러나 박다윗 선생의 사역장은 북한 보위부 관계자가 섞여 들어오면서 며칠 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사역장이 무너진 뒤 요한 형제는 정용철 선생의 사역장으로 옮겨졌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속에서도 그는 불평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에 조용히 적응했다.
3기 · 중국 1차 사역
중국 1차 사역 / 박다윗 선생 사역장 → 정용철 선생 사역장, 3기
3기 · 사역 기록
말없이 말씀을 배우며,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했던 북한 선교사
요한 형제는 2기생 박다윗 선생이 연길로 파송되어 사역하던 중 데려온 북한 출신 청년이었다. 그러나 박다윗 선생의 사역장은 북한 보위부 관계자가 섞여 들어오면서 며칠 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사역장이 무너진 뒤 요한 형제는 정용철 선생의 사역장으로 옮겨졌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속에서도 그는 불평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에 조용히 적응했다.
요한 형제는 성품이 얌전하고 순종적이었다. 정용철 선생의 지도에 잘 따랐고 사역장 안에서 특별한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당시에는 서로 싸우거나 훈련을 거부하고 사역장을 떠나겠다고 버티는 형제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집중되었고, 늘 제자리에 앉아 말없이 공부하는 요한 형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날 요한 형제가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선교사님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했다.
북한 형제들이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 보내 주던 권사님께 감사 편지를 쓰는 일은 있었지만, 얼굴도 목소리도 알지 못하는 사모님에게 먼저 편지를 쓴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그 편지를 통해 평소 말없이 지내던 요한 형제의 깊은 마음을 처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요한 형제는 열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머니의 빈자리가 늘 그늘처럼 남아 있었다.
괴롭거나 슬플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했고, 힘든 일을 만날 때에는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생활했지만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외로움과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요한 형제는 어머니 생각이 사무칠 때마다 기도했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도 예수님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쓰라린 마음을 구세주 예수님만이 알고 계신다고 고백했다.
기도와 말씀훈련이 계속되면서 오랫동안 마음을 덮고 있던 그늘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가며 상실의 아픔을 새로운 사랑으로 채워 갔다.
요한 형제는 사모님이 선교사님과 권사님을 돕고 북한 동포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수고와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어머니 없이 자란 자신도 이제 그런 사랑을 받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고 썼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서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낀 것은, 그가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 돌봄과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 준다.
요한 형제는 현재 훈련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중국에서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자가 되겠다고 편지에 약속했다.
자신이 받은 사랑과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겠다는 고백이었다. 조용히 공부만 하던 청년의 마음속에는 이미 복음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분명한 소망이 자라고 있었다.
요한 형제는 정용철 선생의 지도 아래 성경을 백 번 통독했고 많은 말씀을 암송했다. 눈에 띄는 행동이나 큰 목소리 없이도 매일 주어진 훈련을 꾸준하게 감당했다.
그는 표정훈 목사님의 영성 강의를 들으며 신앙을 더욱 깊이 받아들였다. 말없이 말씀 앞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쌓이면서 북한 선교사로 세워질 준비를 마쳤다.
모든 훈련을 마친 요한 형제는 3기생 선생들과 함께 화산에 올라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화산 정상에서 표정훈 목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과 3기생 북한 선교사들의 기념사진에는, 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공부하던 요한 형제가 복음의 사명을 받은 선교사로 서 있는 모습이 남아 있다.
요한 선생은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단속될 때 다른 선생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북한으로 북송되었고 그때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북한으로 돌아간 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중국 사역장에서 성경을 백 번 읽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으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고백했던 그의 신앙은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다.
거칠거나 소심한 모습을 가진 북한 형제들 모두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사랑을 향한 갈망이 있었다. 요한 선생도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했고, 말씀과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북한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중국 사역장에서 함께 경험했던 주님의 은혜를 다시 나눌 수 있기를 기다린다.
육성 그대로
요한 선생이 정용철 선생 사역장에서 성경훈련을 받던 중 선교사님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이다. 작성 당시의 표현과 문장 흐름을 최대한 살려 수록하였다.
사모님 안녕하십니까?
사모님께 이 편지를 쓰는 저의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사모님을 본 적도 없고 그 목소리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저는 어쩐지 사모님이 저의 어머님처럼 친절해집니다.
중국 연변에 살고 있는 저는 자식을 참된 인간으로 이끌어 가시는 어머니를 10살에 여의었습니다. 때문에 아버지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그늘이 비껴 있었습니다.
괴로울 때나 슬플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고, 힘든 일에 지쳤을 적에도 어머니 품이 그리웠습니다. 나의 이런 쓰라린 마음을 오직 나의 구세주 예수님만 알았을 것입니다. 어머니 생각이 사무칠 때 기도했고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기도하면서 점차 그늘이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모님께서 나 선생님과 권사님은 물론이고 북한 동포들을 위하여 남모르는 수고와 뜨거운 정성을 바쳐 가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어머니 없이 자란 나도 그런 사랑 받아 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사모님 비록 지금은 사역받고 있으나 앞으로 저는 중국에 있는 예수님을 모르고 사는 인간을 본향에로 인도하는 전도자로 될 것을 약속합니다. 주님 안에서 사모님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모님의 평강을 믿으면서 오늘 이만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6월 10일성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