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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중국 2차 사역

사랑

중국 2차 사역 / 자매 사역장

소속 / 사역기수
중국 2차 사역 / 자매 사역장
주요 사역 지역
중국 계서·영평, 중국 동북지역, 한국
주요 역할
성경훈련생, 찬양과 기도로 공동체를 섬긴 탈북 자매
최종 기록
성경 100독을 마친 뒤 한국 입국. 중국에서 시작된 신앙을 이어 가며 정착

중국 2차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가족을 잃은 통곡이 찬양이 되고, 말씀 안에서 다시 웃음을 찾은 사람

영평 산골에서 만난 사랑 자매의 가족

최광 선교사는 북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중국 여러 지역을 다니다가 계서시 인근의 영평이라는 작은 산골 마을을 찾아갔다. 조선족 수십 가구가 모여 사는 외진 마을이었고, 그곳에는 영평교회라는 작은 교회가 있었다.

교회 전도사는 최광 선교사의 사연을 들은 뒤 산속으로 네 시간을 걸어 들어가 숨어 살던 사랑 자매와 아들 찬양이, 남편을 데리고 나왔다.

가족은 사역장으로 옮겨 성경통독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린 아들과 남편이 함께 생활하면서 사랑 자매가 훈련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다.

북한으로 돌아가려던 남편과 잃어버린 아들

사역장 생활과 훈련을 힘들어하던 남편은 가족을 데리고 북한으로 돌아가자고 계속 요구했다. 사랑 자매에게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죽음과 같은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었기에 끝까지 반대했다.

남편은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랑 자매를 때리고, 이를 말리던 사람들과도 다투었다. 결국 그는 아들 찬양이만 데리고 북한으로 향했다.

최광 선교사는 중국 돈 3천 위안을 건네며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사역장을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남편은 국경을 넘다 체포되어 몇 달 동안 감옥생활을 했고, 그 사이 아들은 행방을 잃었다.

다시 중국으로 넘어온 남편은 아내를 만날 면목이 없었는지 사역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연변 지역을 떠돌았다고 전해졌다.

소리 없는 눈물과 찬양으로 드린 통곡

사랑 자매는 북한을 떠날 때 이미 딸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여기에 남편이 아들마저 잃었다는 소식이 더해지자 홀로 감당해야 할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함께 생활하던 탈북 자매들 역시 가족 상실과 북송의 두려움, 인신매매와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 자신의 아픔을 특별히 호소하기도 어려웠다.

사랑 자매는 혼자 멍하니 앉아 소리 없이 울곤 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찬송을 불렀다. 악보를 읽을 줄 몰라 찬송가를 통째로 외웠고, 거의 모든 곡을 기억해 불렀다.

그가 크게 부르던 찬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가족을 잃은 슬픔과 하나님께 드리는 통곡을 대신하는 기도였다.

치유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웃음을 찾다

최광 선교사는 오랫동안 탈북민들의 마음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아 왔다. 사랑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도, 상담을 시도해도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었다.

몸의 상처는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지만 가족을 잃고 버림받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 품고 살아야 하는 가시와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사랑 자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나타났다. 그는 이전보다 담담하고 안정되어 갔으며,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쉽게 요동하지 않았다.

사역 공동체는 매일 부르던 찬양과 기도 속에서 사랑 자매의 깊은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 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웃음을 볼 때마다 최광 선교사는 감사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극심한 통증 속에서 경험한 기도

마음이 안정된 뒤 사랑 자매는 성경도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몸의 뼈가 아프다며 바닥을 구를 정도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석자실 선생을 비롯한 자매들은 사랑 자매의 몸에 손을 얹고 새벽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외지에 있던 최광 선교사는 소식을 듣고 밤새 기차를 타고 돌아와 아침에 사역장에 도착했다.

당시 사역자들은 이 일을 육체적 질병만이 아니라 영적인 압박으로 해석했다. 모든 자매가 다시 일어나 함께 기도했고, 사랑 자매에게 두려움과 통증에 사로잡히지 말고 평소처럼 몸을 움직여 보도록 권했다.

사랑 자매는 기도 후 통증이 사라졌으며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공동체는 이 사건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일로 기억했다.

생명을 붙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사건 이후 사랑 자매에게 성경은 사역장에서 정해진 과정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명과 삶을 붙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성경의 문장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느끼고 신뢰하기 시작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중국에서 겪은 두려움을 말씀과 찬양 안에서 견뎌 냈다.

사랑 자매의 변화는 큰 말이나 특별한 지식보다, 매일 성경을 읽고 찬송을 외워 부르며 기도하는 삶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졌다.

성경 100독과 한국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

사랑 자매는 약속했던 대로 성경을 100번 통독했다. 긴 훈련을 마친 뒤 한국으로 입국해 새로운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의 깊은 산속에서 가족과 함께 발견되었던 사람, 남편과 자녀를 잃은 슬픔 속에서 소리 없이 울던 사람은 찬양과 말씀을 통해 다시 웃는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 온 뒤에도 중국에서 만난 하나님과의 인연을 소중히 지키며 신앙을 이어 갔다. 사랑 자매의 이야기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통곡이 찬양이 되고, 깊은 상처를 품은 한 사람이 말씀 안에서 삶의 안정을 되찾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