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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2기 · 중국 1차 사역

이현수

중국 1차 사역 / 유기풍 선생 사역장 → 허익두 선생 사역장 (1999~2000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유기풍 선생 사역장 → 허익두 선생 사역장 (1999~2000년)
주요 사역 지역
중경, 허익두 선생 사역장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최종 기록
파송 후 체포되어 북한 노동교화소 수감. 석방 후 재탈북, 몽골 경유 한국 입국 및 정착

2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제일 못 할 것 같던 사람이 제일 끝까지 견뎌낸 사람

북한 시절과 탈북

이현수 형제는 탈북 후 연변 의란진에 정착하여 자그마한 나무 가공 공장에서 일했다. 같은 지역의 돌가루 공장에는 월급도 받지 못하고 밥만 먹으며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북한 탈북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현수 형제는 그 나무 공장에서 일하면서 북한 처녀를 만나 가정까지 꾸렸다.

그러나 돌가루 공장에 탈북자들이 하도 많이 모여들자 북한 보위부의 표적이 되었고, 중국 공안이 습격하자 현수 형제도 나무 공장에 더 있을 수 없게 되어 도망가야만 했다. 일자리를 잃은 현수 형제는 아내를 데리고 의란진의 깊은 산속에 숨어서 살기 시작했다.

사역장 입소

1기생 유기풍 선생이 파송되어 나갔을 때, 산속에서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현수 형제는 기풍 선생을 따라 사역장에 들어왔다. 이 때문에 아내와 헤어져야 했다.

기풍 선생은 중경에서 사역하다 한국으로 탈출하려고 팀을 이끌고 베트남으로 갔다가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다. 기풍 선생 사역장이 해체된 후 이현수, 유칼빈, 김예진 형제는 허익두 선생 사역장으로 보내져 공부하게 되었다. 현수 형제는 익두 선생 사역장에 온 이후부터 들떠 있던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장기 금식, 제일 못 할 것 같던 사람이 제일 끝까지 견뎌냈다

기풍 선생 사역장에서 세 명의 형제들이 추가로 영입되자 익두 선생이 선포했다.

“이제부터는 장기 금식 준비들을 하십시오. 마음의 준비들을 하시고 원하는 때에 스스로 시작하십시오. 최소한 10일 이상씩은 해야 합니다.”

현수 형제는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익두 선생님 우리 중경에서 마이 굶다가 왔습니다.”

익두 선생이 말했다.

“북한 선교사 그냥 되는 것 아닙니다. 한 번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다들 두려워했다. 3일 금식을 한두 번 정도 해 보았기에 금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수 형제가 장탄식을 했다.

“아이고 하나님 갈 데는 없고, 있자니 밥 먹지 말라 하고 우리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때부터 다들 근심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끼마다 최대한 많이 먹었다. 익두 선생이 식사 시간마다 종종 말했다.

“장기 금식 준비는 최대한 많이 먹어 놓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적게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몸이 미리 적응하고 견뎌 낼 수 있습니다.”

몇 주가 지나자 김성근 형제가 제일 먼저 금식을 선포했다.

“저 오늘부터 10일 금식을 시작합니다.”

모든 형제들이 믿지 않았다. 현수 형제는 아예 대놓고 말했다.

“며칠 가나 두고 봅시다.”

그러나 성근 형제가 3일 고비를 넘기고 5일째에 들어가자,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현수 형제도 금식을 시작했다. 그 후 사역장의 모든 형제들이 금식에 동참했다. 성근 형제는 7일 만에 포기했지만 현수 형제는 10일까지 금식을 끝냈다. 제일 못 할 것 같다고 하던 사람이 제일 인내했다.

사역장의 맏형, 위기를 넘기다

현수 형제는 사역장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다. 익두 선생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사역장 책임자인 익두 선생의 말에 늘 순종했고, 익두 선생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번은 익두 선생이 실수한 적이 있었다. 홍충신 형제가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자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성근 형제부터 시작해서 온 사역장 형제들이 들고 일어나 익두 선생에게서 배우지 않겠다고, 사역장을 떠나겠다고 했다.

익두 선생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형제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했다. 아무도 마음을 돌리지 않는 상황에서 현수 형제가 제일 먼저 익두 선생을 받아 주었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다. 이 때문에 사역장의 분위기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파송과 체포

이현수 선생은 익두 선생 사역장에서 신약 100독 이상, 구약 10독 이상 읽었고 모든 훈련을 마치고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익두 선생 팀이 파송될 때 현수 선생도 함께 파송되었다.

그러나 학생 모집 도중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현수 선생은 북한으로 끌려 나갔다. 다행히 일반 탈북자로 분류되어 3개월 동안 노동교화소에서 노동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갔고, 이후 다시 중국으로 나왔다.

재탈북과 한국 입국

현수 선생이 중국으로 다시 나왔을 때에는 이미 그들을 기다리던 익두 선생이 어디론가 떠나 버린 뒤였다. 연락이 끊어진 현수 선생은 그때부터 혼자 떠돌아다녔다.

이후 사역장 형제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때 현수 선생과 다시 만났고,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다. 입국 시 현수 선생은 성근 선생과 함께 몽골로 가서 한국 대사관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였다.

역사적 평가

이현수 선생은 중국 사역 역사에서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금식 앞에서 가장 크게 한숨을 쉬었던 사람이, 결국 가장 끝까지 견뎌낸 사람이 되었다. 익두 선생에 대한 형제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을 때, 사역장의 맏형으로서 먼저 용서하고 분위기를 돌려놓은 것도 그였다.

체포되어 북한 노동교화소를 거치고 다시 중국으로 나오는 고난의 길을 걸었지만, 결국 한국에 입국하여 정착했다. 그의 삶은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