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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2기 · 중국 1차 사역

김영윤

중국 1차 사역 / 유기풍 선생 사역장 → 최바울 선생 사역장 (1999~2001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유기풍 선생 사역장 → 최바울 선생 사역장 (1999~2001년)
주요 사역 지역
중경, 연변, 산동성 제남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제남 사역장 팀장
최종 기록
제남 사역장 운영 후 연락 두절. 훗날 한국에 정착, 가정을 이루고 생활 중

2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교회가 싫던 스물세 살, 도망 다니며 몸으로 하나님을 배우다

북한 시절과 연변 생활

김영윤 형제는 김권능 선생의 동생이다. 권능 선생이 성경 공부를 하는 동안 연변의 깊은 시골 마을 의란진 종이 공장에서 일을 했다. 사람이 총명해서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생활 중국어를 구사하기 시작했고, 공장에서 종이 뽑는 기술자로 일했다.

친척 중에 파출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 보호받으며 월급도 매달 꼬박꼬박 받고 일반 중국인처럼 살았다. 이 때문에 여느 탈북자들처럼 생계 때문에 교회를 의지하려 하지 않았다. 교회 전도사님이 가끔씩 찾아와 예수 믿으라고 하면 손을 저으며 도망가 버렸다. 교회도 싫어했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싫어했다.

권능 선생이 파송되어 학생 모집을 나왔을 때 어떻게 설득되었는지, 영윤 형제는 곧바로 1기생 유기풍 선생 팀에 합류되어 사역장으로 들어왔다. 그때 그는 스물세 살 청년이었다.

굶주림과 베트남 행

연변에서 살 때에는 위험도 배고픔도 몰랐던 사람이 사역장에 들어와 참 고생을 많이 했다. 기풍 선생과 함께 중경으로 갔지만 곧바로 사역비도 양식도 떨어졌다. 먹을 것이 없어 논밭에 나가 우렁이를 잡아먹으며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다 기풍 선생이 한국으로 간다고 팀 전원을 이끌고 베트남으로 떠날 때 영윤 형제가 제일 앞장섰다. 팀원들 중 유일하게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풍 선생이 한국행에 실패하고 베트남에서 쫓겨 돌아오자 기풍 선생 팀은 해체되었다. 많은 형제들이 떠나갔지만 영윤 형제는 남아서 공부하겠다고 했다.

도망 다니며 몸으로 배운 하나님

영윤 형제는 최바울 선생 팀으로 배치되었다. 그때부터 마음을 잡고 열심히 공부했다. 바울 선생 팀에서는 양식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자꾸만 쫓겨 다녀야 했다. 계속해서 공안들에게 쫓기고 체포되기도 하면서 공부를 이어 갔다.

그러나 다른 것을 배웠다. 공부하다가도 하나님이 경고를 주시면 도망가고, 파출소에 연행되어 갔다가도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기적과 이사로 빼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이들은 도망 다니면서 하나님을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팀 형제들보다 더 생동감 있게 배웠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사역 도중 공부를 포기하고 떠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팀장인 바울 선생이 바로 하지 못하면 학생들이 잘해 보자고 항의할 정도였다.

김영윤 형제는 바울 선생 팀에서 성경 100독 이상을 읽었고 모든 선교사 훈련 과정을 마쳤다. 김의환 총장님이 오셨을 때 세례를 받았다.

파송과 제남 사역

김영윤 선생은 바울 선생 팀에서 모든 훈련을 마치고 연변으로 파송되었다. 총명한 데다 활동력이 강한 영윤 선생은 파송되자마자 산속에 숨어 살고 있는 세 쌍의 탈북자 부부를 손쉽게 찾아 데리고 산동성 제남으로 내려와 사역을 시작했다.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만나 보니 의욕이 충만하여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다만 여성들을 사역장에 들인 것이 문제였다. 해체시켜 여자만으로 따로 사역장을 만들면 사방에서 자기 아내도, 자기 동생도 데려오겠다고 할 게 뻔했다. 그러면 선교사 훈련 사역이 구제 사역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돌려보내면 남편들이 사역장에 있지 않겠다고 했다.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사역을 진행하게 했다.

공안의 습격과 사역 중단

영윤 선생은 사역을 오래 하지 못했다. 사역장에 공안이 덮쳤다. 다행히 잡히지 않았지만 공부하던 세 쌍의 부부들은 겁을 먹고 그 길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영윤 선생은 의욕을 상실했다. 그래도 연길로 올라가서 다시 팀을 모집해 오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부부들 말고 남자들만 데리고 오라고 다시 파송시켰다. 그 후 연락이 끊어졌다.

한국 정착

김영윤 선생은 훗날 한국으로 와서 다시 찾아왔다. 지금은 한국에 잘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역사적 평가

김영윤 선생은 중국 사역 역사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총명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교회도 예수도 싫어하던 스물세 살이 사역장에 들어와 가장 험한 팀에서 도망 다니며 말씀을 배웠고, 파송 후에는 직접 학생을 모집해 사역장을 세웠다.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 하나님이었다. 공안에 쫓기면서도 버텼고, 부부들이 흩어지는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려 했다. 그 생동하는 믿음이 김영윤 선생 이야기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