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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김순종

중국 1차 사역 / 김누가 선생 사역장 / 3기 북한 선교사 임명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김누가 선생 사역장 / 3기 북한 선교사 임명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용정시 소양천, 서안, 티베트
주요 역할
조선족 순회 전도자, 성경훈련생, 사역장 책임자, 북한 선교사, 티베트 선교사
최종 기록
결혼 후 사모와 함께 티베트 선교사로 사역. 이후 연락이 이어지지 않음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씀을 좇아 티베트까지 간 순종의 사람

교회를 개척한 아버지와 허무했던 청년 시절

김순종 선생의 아버지는 연변 용정시 소양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교회를 개척한 분이었다. 아버지가 교회를 시작할 무렵, 당시 김용만이라는 이름으로 살던 그는 술과 담배, 오락에 빠져 허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교회 개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다. 삶의 방향은 서서히 바뀌었고, 마음속에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뜨거운 열정이 생겨났다.

자전거를 타고 80리 길을 다닌 순회 전도자

김순종 선생은 자전거를 타고 주변 마을을 돌며 복음을 전했다. 사역자가 없는 작은 시골 교회를 찾아가 말씀을 전했고, 때로는 80리가 넘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입도 안정된 생활도 없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조차 치료비를 마련하기 어려웠으나, 필요한 때마다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하며 사역을 이어 갔다.

열심만으로 넘을 수 없었던 성경의 벽

육체적인 어려움과 생활의 고단함은 견뎌 낼 수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큰 벽은 성경이었다. 거의 독학으로 말씀을 배웠기에 성경 전체를 넓고 깊게 이해하고 전달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집회마다 찾아다니며 배우고 기도했지만, 인간적인 열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말씀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갈증은 점점 더 커졌다.

성경 100독 훈련의 소식을 듣다

시골 목회를 이어 가던 중, 서안에서 1년 동안 성경을 100번 읽게 하고 1,000절 이상의 말씀을 암송시키며 체계적으로 훈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은 오랫동안 말씀의 깊이에 목말라 있던 김순종 선생의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런 집중 훈련이라고 생각했고, 반드시 그곳에 가서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병든 아버지와 약혼자를 뒤로하고 서안으로

그러나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중풍으로 앓고 있는 아버지를 두고 가야 했고, 결혼을 약속한 연인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연변에서 스물아홉은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고 여겨지는 나이였고, 약혼자는 빠른 결혼을 원했다.

김순종 선생은 오랜 갈등 끝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아버지에게 뜻을 설명하고 약혼자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뒤, 말씀을 배우기 위해 서안으로 달려왔다.

스물한 살 북한 청년 앞에서 배운 겸손

나는 김순종 선생을 김누가 선생의 사역장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스물한 살 북한 청년이 성경을 깊고 명료하게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독학하고 여러 집회를 찾아다녀도 풀지 못했던 말씀을 김누가 선생은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김순종 선생은 하나님이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몸소 배웠다고 고백했다.

김용만에서 김순종으로

사역장에 들어온 북한 형제들이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그는 자신의 이름도 김용만에서 김순종으로 바꾸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이름에 담았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나이와 경력을 앞세우지 않고 어린 김누가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며 말씀을 배웠다. 공동체 안에서 그의 겸손과 열정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았다.

말씀 앞에서 다시 세워지다

김순종 선생은 성경통독과 암송, 설교와 공동체 훈련에 성실히 참여했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성경 지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되기 시작했고, 말씀을 전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자신의 열심을 드러내기보다 말씀을 정확히 배우고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 갔다. 순종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매일의 훈련을 통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법을 배웠다.

김누가 선생 팀의 책임자가 되다

김누가 선생이 연변으로 올라간 뒤, 김순종 선생이 남은 팀을 맡아 사역장을 이끌었다. 함께 지내던 북한 형제들은 그가 책임자가 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형제들을 부드럽게 대했고, 성실하게 생활했으며, 필요한 순간에는 분명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나이와 국적이 다른 북한 형제들이 그를 신뢰한 것은 그의 태도와 섬김 때문이었다.

성경 100독과 북한 선교사 임명

김순종 선생은 성경을 100번 이상 통독하고 모든 훈련 과정을 마쳤다. 3기 북한 형제들이 북한 선교사로 임명될 때, 조선족인 그도 함께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다.

화산에 올라 드린 임명예배는 그가 말씀을 배우러 온 한 사람에서, 북한과 열방을 향해 복음을 전할 사명자로 세워진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서안 체포와 도문까지의 호송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될 때 김순종 선생도 함께 붙잡혔다. 중국 국적이었던 그는 북한 형제들과 달리 북송되지는 않았지만, 연변 도문까지 호송된 뒤 풀려났다.

함께 훈련받던 북한 형제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흩어졌고, 사역장도 무너졌다. 짧은 시간에 그가 의지하던 공동체와 사역의 기반이 사라졌다.

기다리던 사람마저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했던 약혼자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뒤였다. 말씀을 배우기 위해 떠나면서 내려놓았던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이다.

함께 공부하던 형제들의 체포와 사랑했던 사람의 이별이 한꺼번에 겹쳤다. 김순종 선생은 깊은 상실과 외로움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상실 속에서도 다시 시작한 시골 목회

그럼에도 그는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안에서 배운 성경 지식과 훈련을 바탕으로 고향의 시골 교회들을 다시 섬기기 시작했다.

한국에 와서 신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 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길을 계속 걸었다.

사모와 함께 티베트로

훗날 김순종 선생은 결혼했고, 사모와 함께 티베트 선교사로 나갔다. 연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복음을 전하던 전도자가, 말씀훈련을 거쳐 더 먼 땅으로 향한 것이다.

그의 티베트 선교를 후원하고 싶었지만 이후 연결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어디에 있든 처음 품었던 복음의 열정과 순종의 이름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남아 있다.

역사적 평가 - 열심에서 순종으로, 순종에서 선교로

김순종 선생의 이야기는 인간적인 열심만으로는 넘을 수 없었던 벽을 말씀과 겸손으로 넘어선 한 사람의 여정이다. 그는 병든 아버지와 약혼자를 뒤로하고 말씀을 배우러 왔으며, 자신보다 어린 북한 청년에게 기꺼이 배웠다.

사역장 붕괴와 체포,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속에서도 복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용만에서 김순종으로 이름을 바꾼 그의 결단은 결국 티베트 선교까지 이어졌다. 그의 삶은 지식보다 순종이, 열심보다 말씀의 훈련이 사람을 사명자로 세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