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절
김성근 선생은 아버지가 작가이고 어머니가 의사인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청진의 제철소에서 근무하며 생활하였다.
19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되자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성근 선생은 단순히 자신의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남아 있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을 오가며 돈을 벌었고,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대부분을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함께 생활하던 북한 형제들은 성근 선생을 두고 자신보다 부모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처음부터 신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