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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2기 · 중국 1차 사역

홍만식

중국 1차 사역 2기 / 허익두 선생 사역장 → 김권위 선생 보충 사역장 → 서안 사역장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2기 / 허익두 선생 사역장 → 김권위 선생 보충 사역장 → 서안 사역장
출신 / 배경
북한 청진 출신. 청진 제철소 정광직장 보일러공. 1990년대 식량난 중 생존을 위해 석탄과 전기 설비를 훔치다 중국으로 탈북.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통독 훈련생, 세례자, 연변 학생 모집 후 서안 사역장 개척자
최종 기록
권사님께 보낸 감사 편지와 순교 각오의 고백, 이후 서안 사역 실패와 온성 보위부 재회 기록

2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청진 제철소 보일러공으로 살던 시절

홍만식 선생은 북한 청진 출신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늘 홍범도 장군의 손자라고 말했지만, 김일성과 함께 항일 투쟁을 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 사회에서는 특별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는 청진 제철소 정광직장에서 보일러공으로 일했다. 그러나 공장은 월급도 양식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3일 이상 출근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했기 때문에 출근을 멈출 수 없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공장에 들어오는 석탄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석탄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1990년대의 혹독한 식량난을 버텼다.

훔칠 석탄도 사라지고, 중국으로 도망 나오다

북한의 탄광들에도 양식이 공급되지 않자 탄부들이 석탄을 캐지 못했고, 공장의 보일러는 멈추었다. 홍만식 선생이 훔칠 석탄도 없어졌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는 폐기된 전기 설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변압기와 전동기를 해체해 구리선을 빼내 팔았고, 그것마저 떨어지자 가동 중인 전기 설비까지 뜯어 팔았다. 당시 북한에서는 공장 설비를 떼어 팔아먹는 사람이 많아지자 공개 총살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는 안전부에 잡히면 무조건 처형당한다는 것을 알고 그 길로 중국으로 도망 나왔다. 그때부터 아내와 자식들과도 헤어져야 했다.

허익두 선생을 만나 사역장에 들어오다

중국으로 탈북했지만 홍만식 선생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정처 없이 떠돌던 그는 다행히 허익두 선생을 만나 우리 사역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원래 공부를 즐겨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성경 공부와 훈련은 몹시 힘들어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사역장에 머물며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기도 시간에 코를 골며 자고, 통독 시간에는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았다. 토요일마다 하는 운동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먹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였던 사람

홍만식 선생이 유일하게 활기 있고 명랑해지는 시간은 식사 시간이었다. 그는 최대한 많이 먹으려고 애썼고,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늘 못마땅해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약 중 소화제를 발견한 뒤부터는 소화제를 먹어 가며 밥을 먹었다. 통독 시간에도 집중하지 않고, 기도 시간에도 자고, 운동도 하지 않던 사람이 매일 밥을 산만큼 먹다 보니 한 달 만에 앞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배를 만지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북한에서는 노동당 간부들만 그렇게 배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자기도 이제 잘 먹고 잘 자서 배가 나왔다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형제들은 놀렸지만 그는 배가 나온 것을 눈물 나게 기뻐했고 자랑했다.

순하고 넉넉했지만 신앙에는 무관심했던 사람

홍만식 선생은 먹는 것 외에는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었다. 먹을 때만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 생각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다고 했다. 허익두 선생도 그를 두고 힘들어했다. 성경도, 하나님도, 예수님도,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북한 형제들이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면 그는 옆에 덤덤히 앉아 있다가 부엌으로 나가 맛있는 죽을 끓였다. 어린 형제들이 남김없이 먹어 버리자, 그 다음부터는 아예 죽을 한 가마씩 끓였다. 함께 공부하던 형제들도 그의 순하고 너그러운 성품은 좋아했지만, 신앙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예상 밖의 장기 금식

익두 선생 사역장 형제들이 1주일에서 10일씩 장기 금식에 들어갔다. 누구도 홍만식 선생에게 금식을 기대하지 않았다. 도저히 금식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불쑥 ‘나도 금식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역장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어린 형제들은 하루 세 끼만 먹어도 금식이라고 농담했지만, 그는 한 주일 금식을 하겠다고 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홍만식 선생은 끝까지 금식을 해냈다. 10일 한다던 김성근 선생은 7일밖에 못했지만, 홍만식 선생은 성실하게 약속한 금식을 마쳤다. 금식이 끝나자 만삭처럼 나왔던 배가 훌쭉해졌고, 어린 형제들은 장난스럽게 놀렸다.

북한의 고통을 성경 안에서 묻기 시작하다

금식 이후 홍만식 선생은 변하기 시작했다. 함께 석탄을 훔치고 전기 설비를 뜯던 친구들은 감옥에 갔거나 처형당했는데, 자신은 이렇게 배불리 먹고 편안히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미안해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가난해야 하는지, 왜 이런 무서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성경 안에서 찾으려 했다. ‘왜 하나님이 남조선은 돈을 많이 주고 우리는 먹을 것도 안 주냐’는 질문은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는 기도할 때에도 같은 질문을 하며 울었다. 홍만식 선생은 자기 주변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고 있었다. 어느새 그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세례와 정직한 고백

김의환 총장님께서 허익두 선생 사역장에 오셨을 때 홍만식 선생은 세례를 받았다. 이후 허익두 선생 사역장 선생들을 파송하던 날, 그는 나를 찾아와 파송을 보류해 달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아직 선생으로 서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고, 무엇보다 담배를 끊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선생이 어떻게 담배를 피우면서 학생들을 가르칩니까?’라는 말은 단순하지만 정직한 고백이었다. 오래 기다렸던 파송을 앞두고도 숨기지 못하고 실토한 것이다. 나는 그를 김권위 선생 사역장에 보내 보충 학습을 하게 했다. 변화된 그가 기뻤고, 그 기쁨은 그에 대한 믿음이 되었다.

권사님을 그리워하던 마음

홍만식 선생은 북한에 아내와 딸을 두고 왔기에 누구보다 사랑에 목말라했다. 그는 나의 어머니인 권사님을 늘 그리워했다. 우리 가족이 중국으로 들어오며 잠시 익두 선생 사역장에 들렀을 때, 권사님의 따뜻한 위로와 동정의 말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았던 것 같다. 권사님은 계속해서 김치를 담가 사역장에 보내 주었다. 어느 날 아내가 김치를 담가 보냈더니 북한 형제들이 곧바로 김치 맛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만큼 권사님의 손맛과 사랑이 형제들의 몸과 마음에 깊이 배어 있었다.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던 사람이 쓴 편지

북한 형제들은 좀처럼 자기 마음을 글로 표현하지 않았다. 감사해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었다가 만나면 씩 웃거나 시시한 농담을 던지는 정도로 표현했다. 그런데 어느 날 홍만식 선생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혀를 위로 빼물고 땀까지 흘리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글을 썼다. 그 글씨는 마치 유치원 아이가 멀리 떨어진 보고 싶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그 편지 안에는 북한 현실에 대한 증언, 권사님과 사모님에 대한 감사, 주님의 일에 대한 순교의 각오, 그리고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연변 파송과 서안 사역장 개척

홍만식 선생은 권위 선생 팀이 파송될 때 함께 연변으로 나갔다. 그는 김철수, 배소명, 이선장 등 7명의 형제들을 모집해 서안으로 내려와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역은 영적인 싸움이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북한 형제들을 안아 주어야 할 때도 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고 때로는 아픈 매질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성품이 모질지 못한 홍만식 선생은 학생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계속 끌려 다녔다. 결국 사역은 흐지부지되었고, 선교사 훈련장이었던 사역장은 구제 사역장처럼 변해 갔다. 심지어 식사 때마다 맥주를 사서 먹기 시작했다.

팀장 해임과 사역장을 떠난 뒤

여러 번 경고하고 주의를 주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홍만식 선생은 팀장에서 해임되었고, 그 사역장에는 성근 선생이 팀장으로 세워졌다. 해임된 홍만식 선생은 권위 선생 사역장에 학생으로 보내졌다. 의욕 있게 사역을 진행하려 했던 그는 완전히 낙담했고, 결국 마음의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사역장을 떠났다. 훗날 우리 선생들이 서안에서 모두 체포되어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보위부로 나갔을 때, 그곳에서 홍만식 선생을 다시 만났다. 그는 열차에서 공안에 체포되어 잡혀 나와 있었다.

역사적 평가

홍만식 선생의 이야기는 실패와 변화가 함께 담긴 기록이다. 그는 처음에는 먹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기 금식과 세례, 권사님께 보낸 편지 속에서 그의 내면에는 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사역 리더로서는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사역장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편지는 북한 식량난과 탈북자의 고통, 복음을 만난 한 사람의 진심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중요한 증언이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편지

권사님에게 드립니다

권사님에게 드립니다.

우리 민족의 복음 통일을 위하여 21세기 세계 선교를 위하여 세계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고 계시는 권사님

안녕하십니까?저는 북한 탈북자 2기반 허익두 선생의 사역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학습하고 있는 홍만식입니다. 저의 사역장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은 5월 15일에 파송되었지만 저는 남아서 권위 선생 사역장에서 몇 달 더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하나님 말씀 구약 11독, 신약 110독을 하였습니다.

권사님, 권사님과 가족들과 상봉을 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1999년 8월, 11월 두 차례 상봉이 저의 마음에 영원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권사님과 사모님,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저를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당당한 복음의 전도자로 세워 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권사님과 사모님께 우리 최광 선생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또 음식과 기온이 맞지 않는 데서 조국과 멀리 떠나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계시는 권사님과 사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99년 2월에 탈북하여 1999년 6월 4일에 주님을 영접하여 학습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저 우상숭배 속에서 빛도 없이 방황하며 살던 저를 이렇게 참다운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권사님 저는 저 북한 땅에 어린 딸(5살)과 안해와 두 누이동생을 두고 제 혼자서 탈북하였습니다. 양 부모와 두 남동생은 1995~1996년 사이에 다 사망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비극적인 가정은 저희 가정만 아니라 수많은 가정에서도 비참한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북한 땅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사형에 처형되고 있습니다. 특히 탈북자들과 또 탈북하여 성경 공부를 하는 사람은 이유 구실 없이 죽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 우리 북한 탈북자들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진리를 모른 채 잡히기만 하면 죽음은 죽음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권사님 저는 주님의 일을 위하여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진정한 진리를 깨닫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권사님 늙으신 육체로 주님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시느라고 우리 사역장 선생님들은 권사님의 건강과 사모님, 가족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역장이 확장됨에 따라 우리 최광 선생님께서도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권사님, 사모님, 건강한 육체로 21세기 우리 북한 선교와 하나님 나라 확장에서 많은 일과 성과를 희망하면서 펜을 놓겠습니다.

주 안에서 건강한 육체를 저희 사역장에서상봉과 교제의 그날을 위하여안녕히 계십시오.

홍만식 올림

할렐루야!

권사님 편지에 글씨가 곱지 못하여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욥기 8장 7절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시편 119편 97절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아멘

저희 사역장을 꼭 찾아오십시오.

사진 자료 설명

  • 1. 나의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서 놀고 있는 허익두 선생 팀 북한 형제들 — 노란색 선 안에 홍만식 선생.
  • 2. 우리 가족들과 허익두 선생 사역장 형제들이 함께 두장옌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 — 노란색 선 안에 홍만식 선생.
  • 3. 김의환 총장님께서 허익두 선생 사역장에 오셨을 때 홍만식 선생은 세례를 받았다.

* 원본 사진은 정리 중입니다. 설명만 먼저 수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