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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중국 2차 사역

드보라

중국 2차 사역 / 자매 성경훈련 공동체

출신
북한 함경북도 회령
소속 / 사역기수
중국 2차 사역 / 자매 성경훈련 공동체
주요 역할
성경훈련생, 일대일 양육 참여자
최종 기록
한국 입국 후 천안에서 루디아 자매와 함께 교회 공동체에 정착

중국 2차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굶주림과 불안 속에서 중국으로 넘어와 말씀 안에서 평안을 찾은 사람

두만강을 매일 바라보며 자란 회령의 농장원

드보라 자매는 북한 함경북도 회령 출신이다. 집이 두만강 가까이에 있어 매일 강 건너 중국을 바라보며 자랐다.

동네 사람들이 밤을 이용해 몰래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가져오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았다. 다른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이 목숨을 건 결단이었다면, 드보라 자매에게 중국은 멀리 떨어진 낯선 세계라기보다 강 건너 눈앞에 보이는 곳이었다.

그는 농장에서 농사일을 했다. 북한 농장은 일 년에 한 번 양식과 월급을 지급했지만, 식량난이 시작된 뒤에는 그마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때로는 옥수수 10킬로그램을 내주며 그것으로 한 해를 버티라고 했다.

굶주림이 밀어낸 탈북

식량난이 깊어지자 농사를 짓는 농장원들이 오히려 가장 먼저 굶주렸다. 드보라 자매도 어린 시절부터 늘 배고픔을 견디며 살았고, 결국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함 앞에서 중국으로 넘어왔다.

그에게 탈북은 거창한 정치적 결단보다 살아남기 위한 행동에 가까웠다. 국경을 넘는 위험보다 굶주림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일이 더 두려웠다.

한국행을 기대하며 찾아온 사역장

중국으로 왔지만 머물 곳이 없었던 드보라 자매는 한국인 선교사를 만나면 한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사역장을 찾아왔다.

일 년 동안 성경을 배우면 한국행을 돕겠다는 말을 듣자 그는 자신은 5년 동안도 공부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함께 생활하던 북한 자매들은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감추기 위해 한 말이라고 여겨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드보라 자매는 주변 분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신은 한국에 가려고 온 것이 아니라 공부하러 왔으며 오직 공부만 하겠다고 다시 강조했다.

성막과 구속사에서 만난 예수님의 보혈

드보라 자매는 성막과 구속사에 관한 강의를 들으며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보혈이 죄를 씻고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라는 내용을 배우면서, 그 은혜를 받는 일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임을 깨달았다.

예배 중에는 박수를 치며 찬양했고 공동체의 기쁨이 깊어지면 다른 자매들과 함께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쉽게 흔들리던 마음이 평안을 찾다

드보라 자매는 본래 마음이 약하고 작은 문제에도 크게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안절부절못했고 다른 사람의 말에도 쉽게 흔들렸다.

그러나 성경을 배우는 시간이 쌓이면서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이전처럼 사소한 일에 불안해하지 않았고,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쉽게 요동하지 않게 되었다.

말씀을 통해 그의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일대일 양육을 통해 시작된 기쁨

이현권 목사가 사역장을 방문했을 때 드보라 자매는 일대일 양육 교재로 한 주 동안 신앙의 기초를 차근차근 배웠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드보라 자매의 표정과 생활이 달라졌다. 전보다 자주 웃었고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즐거워했다.

젊은 사람이 사랑에 빠진 것처럼 얼굴에는 기쁨과 설렘이 드러났다. 그는 한국에 가게 되면 반드시 이현권 목사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서 이어진 신앙생활

드보라 자매는 사역장에 들어온 지 약 일 년 뒤 한국으로 입국했다.

기록 당시 그는 천안에서 루디아 자매와 함께 한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다.

굶주림을 피해 중국으로 넘어왔고 처음에는 한국행을 기대하며 사역장을 찾았지만, 말씀을 배우는 동안 불안한 마음이 평안으로 바뀌고 예배와 양육의 기쁨을 경험했다. 그의 이야기는 신앙이 한 사람의 환경보다 먼저 마음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