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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최윤철

중국 1차 사역 / 이용섭 선생 사역장 / 3기 북한 선교사 임명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이용섭 선생 사역장 / 3기 북한 선교사 임명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서안, 화산
주요 역할
북한 출신 운동선수,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
최종 기록
서안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북송된 뒤 행방이 확인되지 않음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운동선수의 자신감으로 시작해 자기와 싸우는 훈련을 견딘 사람

운동선수 출신의 자신감 넘치는 청년

최윤철 선생은 2기생 이용섭 선생이 연변에서 학생으로 모집해 온 북한 출신 청년이었다. 북한에 있을 때 운동선수로 활동했으며, 체육인 특유의 강한 체력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고 덤비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경통독과 선교사 훈련도 운동선수 시절의 강도 높은 훈련처럼 버티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성경훈련을 체력훈련처럼 시작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읽어 본 경험도 없던 탈북자에게 성경을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도와 통독, 말씀 암송과 과제 수행이 하루 종일 이어졌고, 사역장의 생활은 아침 6시부터 쉼 없이 진행되었다.

윤철 형제는 처음에는 자신의 체력과 의지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훈련이 몸을 단련하는 과정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몸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

운동선수의 훈련이 육체의 한계를 이겨 내는 싸움이었다면, 사역장의 훈련은 자신의 습관과 감정, 욕심을 내려놓는 싸움이었다. 사역장에 들어오기 전 몸에 밴 산만함과 무절제한 생활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체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혈기와 자신감은 오히려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는 데 장애가 되었다. 윤철 형제는 훈련을 견디면서 성경통독이 단순히 많은 분량을 읽는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바꾸는 과정임을 배워 갔다.

군대보다 열 배 힘들었던 통독장 생활

북한 형제들은 사역장의 생활을 두고 “북한에서 군대 생활하던 것보다 열 배는 더 힘들다”고 말하곤 했다. 윤철 형제도 훈련이 너무 고되다며 자신들을 살리려는 것인지, 피를 짜서 죽이려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토로했다.

그만큼 기도와 통독, 암송과 공동체 생활은 그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압박했다. 하지만 그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이용섭 선생과 함께 훈련을 계속했다.

붉은 소변이 나올 만큼 고된 과정

어느 날 윤철 형제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 같다며 크게 놀랐다. 당시 사역장에서는 강도 높은 훈련과 피로 속에서 나타난 신체적 이상으로 받아들이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에게 이 경험은 체력에 대한 자신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훈련의 현실을 보여 주었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그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말씀훈련을 이어 갔다.

품속에 간직한 최신형 핸드폰

당시 중국에서 핸드폰은 매우 비싼 물건이었고 통화료도 부담스러웠다. 탈북자들에게는 가까이에서 구경하기도 어려운 물건이었지만, 윤철 형제는 중국의 부유한 친척에게 받은 최신형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통화료가 없어 거의 사용하지 못하면서도 핸드폰을 소중하게 품고 다녔다. 한국에 있는 친척이 언젠가 연락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한국 친척을 구원의 끈으로 붙들다

윤철 형제는 한국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한국으로 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생각해 보겠다”는 말이었지만, 그는 그 말을 기다리라는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자 그는 한국에 다시 전화할 수 있도록 통화료를 부탁했다. 핸드폰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탈북자의 불안한 삶에서 자신을 건져 줄 유일한 희망처럼 여겨졌다.

사람의 도움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기다리다

나는 윤철 형제가 한국의 친척보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를 바랐다. 동정하는 친척은 있을 수 있지만, 큰 희생을 감수하며 한 탈북자의 삶 전체를 책임지는 일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렸다.

직접적으로 그의 기대를 꺾기보다는 말씀과 공동체 생활 속에서 의지할 대상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인내하며 지켜보았다.

1년의 기다림 끝에 내려놓은 미련

약 1년이 지나자 윤철 형제는 더 이상 한국에 전화할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친척이 자신을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조금씩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그 시간 동안 그는 힘든 사역장 생활을 견디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훈련을 계속했다. 외부의 도움을 기다리던 마음은 점차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말씀을 배우고 사명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옮겨 갔다.

모든 훈련을 마치고 북한 선교사로

윤철 형제는 성경통독과 말씀 암송, 기도와 공동체 훈련을 끝까지 견디어 냈다. 운동선수의 자신감으로 시작한 훈련은 자신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다른 3기생들과 함께 화산에 올라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성경을 처음 접했던 한 탈북 청년이 북한과 동포를 위해 복음을 전할 사명자로 세워진 순간이었다.

화산에서 드린 임명예배

화산에서 열린 임명예배에서 윤철 선생은 함께 훈련받은 북한 선생들과 예배드리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순교자 김철수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도 이 시기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예배는 그가 오랫동안 견뎌 온 훈련의 결실이자,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는 삶에서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서안 사역장 전체 체포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일제히 체포될 때 윤철 선생도 함께 붙잡혔다. 사역장에서 공부하던 북한 선생들과 형제들은 갑작스럽게 자유를 잃었고, 자신들이 북한으로 끌려간 뒤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모두가 생명과 앞으로의 운명을 걱정하던 때, 윤철 선생은 사역장에 두고 온 핸드폰이 아깝다며 걱정했다. 오랫동안 품고 다닌 물건과 한국 친척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 끌려가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윤철 선생은 다른 북한 형제들과 함께 북한으로 북송되었다. 그가 선교사로 임명받은 뒤 실제 사역을 시작했는지, 북송 과정에서 어떤 조사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체포 이전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후 행적을 알아낼 방법이 거의 없었다. 국경을 넘어간 뒤 윤철 선생과의 연락은 완전히 끊어졌다.

정치범 수용소에는 가지 않았다는 마지막 확인

북한으로 끌려간 형제들의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윤철 선생이 정치범 수용소나 감옥으로 보내지지는 않았다는 정황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되었는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북한 어딘가에 살아 있을 가능성을 남긴 채 그의 기록은 멈추어 있다.

역사적 평가 - 자신감에서 의지로

최윤철 선생의 이야기는 강한 체력과 자신감만으로 시작한 한 사람이 말씀훈련을 통해 자기 자신과 싸우는 법을 배워 간 과정이다. 그는 군대보다 힘들다고 느낀 통독장 생활을 견디며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다.

한국 친척과 핸드폰을 구원의 끈처럼 붙들었던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온전히 이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북한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사람과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사실을 붙들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