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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중국 2차 사역

최광 선교사

중국 2차 사역 재개 / 2008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2차 사역 재개 / 2008년
주요 사역 지역
중국 동북지역, 계서시, 영평, 밀산
주요 역할
탈북민 탐색·성경교육, 비밀 미션홈 사역, 북한 선교사 양성
최종 기록
6개월의 탐색 끝 북한 자매 네 명을 만나며 중국 2차 사역을 시작

중국 2차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탈북자의 마음으로 길을 걸으며 다시 열린 중국의 두 번째 사역

6년 만의 중국 재입국과 달라진 선교 현장

최광 선교사는 2001년 서안 사역장 체포 사건 이후 중국에서 추방되었다. 다시 중국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여섯 해가 지난 2008년이었다.

그가 다시 만난 중국은 과거의 중국과 달랐다. 북한 사람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치고 선교사로 세웠던 방식이 여전히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들어갔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이미 크게 바뀌어 있었다.

공항에서는 군인들이 경계하고 있었고 신발까지 검사대를 통과시켰다. 전철역 출구마다 검문검색이 이어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비와 티베트 독립운동 관련 사건 이후 중국 전역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외국인과 탈북민을 둘러싼 긴장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최광 선교사는 옛 서안 사역 때 도움을 주었던 지인들을 다시 찾아가 북한 선교를 재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사래를 쳤고, 어떤 이들은 현실을 모른다며 비웃기까지 했다.

연길에서 한국인들이 이유 없이 체포되어 조사받았고, 겨울에도 탈북자들이 보이지 않으며, 단속이 너무 심해졌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조선족 사역자들도 탈북민 사역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달라진 탈북민의 삶과 사역 구조

1990년대에 아무 연고 없이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민들의 형편은 참혹했다. 중국어를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어 생존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한국 선교사를 만나면 숙식과 보호를 제공하는 시설에 의지해야 했다. 많은 탈북민이 처음부터 신앙을 원해서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선교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2008년 무렵에는 탈북민들의 선택지가 달라져 있었다. 이미 2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한국에 입국했고, 중국에 있는 탈북민들도 한국의 친척과 가족, 친구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도 탈북민 문제에 관심을 보이며 이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선교 시설에 머물러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중국에 오랫동안 머문 탈북민들도 빠르게 현지 사회에 적응했다. 남성들은 생활을 유지할 일자리를 찾았고, 여성들은 결혼과 사회생활을 통해 중국 안에 삶의 기반을 만들었다.

외모만으로는 탈북민과 조선족을 구분하기 어려워졌고, 사람들은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더욱 철저하게 감추었다. 이 변화는 북한 선교 현장의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탈북민들은 더 이상 지하 사역장에 숨어 기약 없이 성경만 공부하는 생활을 원하지 않았다. 한국이나 제3국으로 이동할 길이 생겼고, 중국 안에서도 자신의 생활을 꾸려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엄한 검문검색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더 깊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중국 전역을 돌아다녀도 탈북민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여섯 달의 실패와 다시 드린 기도

최광 선교사는 북한 사람과 관련이 있을 만한 사람을 찾아 중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선교사와 조선족 전도자, 지역 교회 사람들에게 탈북민의 행방을 물었지만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탈북민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나도 당사자는 절대로 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사라졌다. 여섯 달을 찾아다녔지만 단 한 사람도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북한 출신 선교사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질 수 없었다. 사람을 만나고 함께 생활하며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훈련해야 했다.

최광 선교사는 옛날처럼 탈북민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북한을 위한 일꾼으로 세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는 여전히 캄캄했다.

사람을 찾는 방법을 바꾸다

그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더 이상 탈북민을 만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선교사나 조선족 사역자들에게 물어보는 대신, 과거 서안 사역을 추적했던 북한 보위부 사람들의 방식처럼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조선족이 사는 외진 마을과 탄광촌, 공안과 보위부의 눈길이 잘 닿지 않을 것 같은 변두리를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혼자 계서시로 떠난 무작정 여정

최광 선교사는 혼자 기차를 타고 계서시라는 작은 도시로 향했다. 일행이 있으면 숨어 있는 탈북민들이 경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차는 열두 시간을 달려 새벽 다섯 시에 도착했다. 4월이었지만 북쪽 지방은 한겨울처럼 추웠고, 문을 연 식당도 없어 목욕탕에서 몸을 녹이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무런 정보도 계획도 없는 길이었다. 그는 정처 없이 이곳까지 왔으니 자신의 발걸음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 저는 그저 걸어 다녀 보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버스를 타고 낯선 마을을 걷는 것뿐이었다. 탈북민들도 연고 없이 도망쳤다면 이런 방식으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이 밝자 그는 아무 버스에나 올라타 종점까지 갔다. 작은 시내를 이리저리 걷던 중 ‘대동강 냉면집’이라고 한글로 적힌 간판을 발견했다.

그 간판은 이 지역에도 조선족 공동체가 있다는 단서였다. 식당 사람들에게 조선족이 사는 마을을 물었고, 두 곳의 위치를 소개받았다.

영평에서 발견한 첫 북한 사람의 흔적

다시 버스를 타고 영평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조금만 더 가면 세상의 끝이 나올 것처럼 외지고 깊은 지역이었다.

그곳의 조선족 교회를 찾아갔을 때 수요예배를 마친 사모와 몇몇 성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도자는 외지에서 한족 지도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교회 사모는 이 교회에 북한 사람 한 명이 출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섯 달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던 최광 선교사에게는 캄캄한 숲속에서 작은 불빛을 만난 것 같은 소식이었다.

탈북민의 심정으로 외진 곳을 따라 들어오니 그들이 도망해 간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돕는 선교사의 시선이 아니라 숨어야 하는 탈북민의 시선으로 길을 바라본 결과였다.

밀산에서 확인한 사라진 탈북민 공동체

영평 교회 사모는 밀산 지역에서 탈북민들을 많이 돌보던 목사를 소개해 주었다. 최광 선교사는 다시 두 시간을 버스로 달려 깊은 산속의 조선족 마을과 교회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목사는 탈북민들이 모두 떠나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마을의 교회도 문이 닫혀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공안의 단속과 벌금 때문에 더 이상 탈북민을 보호할 수 없다고 했다.

교회 옆에 살던 한 집사는 과거에는 탈북민을 많이 돌봤지만 공안의 단속 이후에는 밥만 먹여 보내는 것조차 두려워졌다고 말했다.

최광 선교사는 세상의 끝처럼 외진 지역에서도 탈북민이 머물 곳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곳에서도 쫓겨났다면 그들이 더 이상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숨겨져 있던 네 명의 북한 자매

그날 밤 다시 영평으로 돌아온 최광 선교사는 조선족 교회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전도사에게 자신의 절박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긴 이야기를 들은 전도사는 다음 날 북한 자매 네 명을 소개해 주겠다고 말했다. 북한 남성은 중국에서 신분을 감추고 살기 어렵지만, 중국인 남편과 자녀가 있는 여성들은 공안도 쉽게 체포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다음 날 최광 선교사는 최경옥, 김영옥, 박순실, 조순덕 자매를 만났다. 여섯 달 동안 찾아 헤맨 끝에 처음으로 연결된 북한 사람들이었다.

자매들은 장애가 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국인 남편과 살고 있었고 모두 자녀가 있었다. 가족을 떠나 비밀 사역장에 들어와 장기간 성경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매들이 사는 집을 직접 찾아가 보니 생활 형편은 매우 열악했다. 한 번 보지 않았다면 지나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의 처지를 확인한 뒤에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새로운 사역은 사람을 한곳에 모아 훈련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가정과 삶의 자리로 찾아가 말씀을 나누고 생활을 돕는 방식으로 시작되어야 했다.

말씀 암송과 생활 지원을 연결하다

최광 선교사는 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성경 말씀을 나누었다. 자매들이 말씀을 암송하도록 하고, 암송한 분량에 상응하는 생활비를 지급했다.

자매들은 성경을 배우면서 동시에 가정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했다. 생계와 신앙을 분리하지 않고, 현실을 품으면서 말씀을 배우게 하는 새로운 사역 방식이었다.

도와주는 사람에서 도망자의 마음으로

그동안 최광 선교사는 탈북민을 돕는 사람의 위치에서 그들을 찾아다녔다. 그 시선으로 보았을 때에는 가난과 무지, 절박함 같은 외형적인 모습만 보였다.

이번에는 자신도 갈 곳과 보호자가 없는 사람처럼 길을 걸었다. 안전한 장소를 찾아 숨어야 하고, 낯선 나라에서 돈을 벌어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야 하는 탈북민의 마음으로 산길과 변두리를 지나갔다.

탈북민에게 중국은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선 나라였다. 공안과 북한 보위부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더 깊이 숨어야 했고, 동시에 굶주리는 가족을 위해 돈을 마련해야 했다.

최광 선교사는 첩첩산중의 길을 걸으며 그 절박함을 비로소 자신의 마음으로 느꼈다. 탈북자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와 같은 마음에 서는 것임을 깨달았다.

눈물 속에서 만난 주님의 마음

탈북민의 마음이 들어오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탈북민들의 마음속에서 함께 울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오랫동안 찾던 사람들을 만날 길이 열렸지만 기쁨보다 슬픔과 고통이 더 크게 밀려왔다. 서안 사역 시절 김권능 선생이 떠나보내는 탈북민 때문에 왜 그렇게 아파했는지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이 여정은 늘 곁에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탈북민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숨어 있는 장소와 이동 방식도 보이기 시작했다.

도망자의 심정으로 찾아간 외진 마을마다 북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길이 열렸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 두 번째 사역의 문이 열리다

최광 선교사는 “내가 이제야 탈북자들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사람을 발견한 것보다 그들의 마음과 처지를 만난 것이 더 중요한 출발이었다.

이후 그는 탈북민들이 숨어 가는 길과 비밀스러운 삶의 자리를 따라가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여섯 달의 실패와 한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과정을 지나, 중국에서의 두 번째 북한 선교 사역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