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형제들의 언어는 매우 거칠었다. 식사가 끝나고 냉면이 조금 남으면 “우리 다 함께 냉면을 타도하자”라고 말할 정도였다. 상대를 비하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언어가 일상화되어 있었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말버릇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통독이 끝난 후 형제들에게 서로 경어를 사용하고, 부를 때에는 “형제님”이라고 부르라고 지시했다. 서로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식사 당번을 시키겠다고 했다.
가장 힘들어한 사람이 방무디 형제였다. 사역장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기 때문에 그는 나이 어린 형제들에게 존댓말을 써야 했다. 특히 가장 어린 권능 형제를 향해 “권능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는 얼굴이 빨개져 도망치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못해요, 안 해요”라고 버텼다.
나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그가 소중했기 때문에 반드시 변화시켜야 했다. 두 달 정도 말을 고치느라 애를 먹었지만, 힘들게라도 말 문화를 바꾸어 놓았더니 모두가 좋아했다. 천성적으로 착한 마음을 가진 무디 형제가 아름답고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자 정말 사람이 멋있어졌다. 말을 통해 가장 극적으로 이미지가 변한 사람이 무디 형제였다.
“아, 우리 북조선에는 이케 말하는 법이 없시여. 아들보다 좀 큰 새끼 보고 ‘형제님’ 하고, 또 아들 같은 시키가 ‘형제님’ 함까? 못함다. 이것만은 썩어져두 못함다!”
“선교사님! 난 못해여! 못해여! 안 해! 안 해! 아이고 하나님, 저 선교사님 좀 말려 주십쇼.”